오경택 동양다이캐스팅 사장이 인천 공장에서 생산한 가스압력조절기와 자동차 부품의 수출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오경택 동양다이캐스팅 사장이 인천 공장에서 생산한 가스압력조절기와 자동차 부품의 수출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오경택 동양다이캐스팅 사장(59)은 늘 웃는 표정이다.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언젠가 좋아지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 개성공단 사태 때문이다. 동양다이캐스팅은 개성에 대지 5200㎡, 건평 4000㎡ 규모의 공장이 있다. 개성에서 일부 제품의 기초 작업을 한 뒤 인천 남동산업단지 내 공장으로 들여와 마무리 가공을 한다. 그런데 두 달 넘게 개성공장이 문을 닫은 상태다.

그러다 보니 인천공장은 각종 자재와 중간 가공품으로 가득 차있다. 이곳에서 모든 작업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다이캐스팅은 3년 정도 종업원을 훈련시켜야 겨우 제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이 중요하다. 이 회사는 2009년 개성공단에 진출해 250명을 고용하고 이들을 훈련시켰다. 인천공장의 세 배가 넘는 인원이다.

개성공장 가동중단에도 '꿋꿋'…"무결점 추구 26년 신뢰 쌓으니 대기업이 먼저 나서 돕더군요"
오 사장은 “이제 비로소 직원들이 숙달됐고 주문도 밀려들고 있는데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언젠가 개성공장 전기로에 불을 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오 사장은 “개성공단 진출 기업 중에는 우리보다 훨씬 힘든 기업도 많다”며 “이들과 함께 공장 가동이 재개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개성공단 사태로 어려움에 처하자 발주기업들이 지원에 나섰다. 몇몇 대기업은 개성에 있는 금형을 다시 만들 수 있도록 결제대금 일부를 선금으로 보내왔다. 일부 기업은 자사의 완제품 생산 일정을 조정해줬다. 요즘 ‘갑을 관계’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으나 이 회사는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줘 어려움을 넘기고 있다.

이는 오 사장의 성실성과 제품에 대한 집념을 인정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1987년 창업해 26년 동안 다이캐스팅 한우물을 팠다.

다이캐스팅은 뿌리산업이다. 알루미늄 아연 니켈 등을 전기로에서 녹여 틀에 부은 뒤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공정이다. 밀가루 반죽으로 붕어빵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를 통해 각종 전자 및 자동차 부품 100여종을 생산한다. 여기에는 에어백이나 윈도브러시, 엔진냉각탱크 부품을 비롯해 가전부품과 전기압력밥솥 뚜껑 등도 들어있다.

오 사장은 “생산 제품 중 가스압력조절기(레귤레이터)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상용화했다”고 설명했다.

사장실 책상에는 이들 부품이 가득 놓여 있다. 전시실 공간이 부족한 데다 제품을 늘 쳐다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이 회사는 GE와 일렉트로룩스 등 글로벌 기업에 가스압력조절기나 가스자동개폐밸브 등을 수출한다. 오 사장은 “수출국은 10개, 수출 대상 기업은 20여개, 연간 수출액은 600만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들 제품의 상당수는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오 사장은 제물포고와 인하대 기계과를 졸업한 뒤 1979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가스레인지 연구부서에서 일했다. 이후 세신금속으로 옮겨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을 개발했다. 그 뒤 1987년 직원 한 명과 부평에서 창업해 전자부품과 자동차부품을 생산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 가지를 추구했다. 첫째, 결점이 없는 제품 생산이다. 이를 위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했다. 지금도

천 공장에는 ‘제로 PPM에 도전한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무결점 제품을 생산하자는 뜻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 단계에서 구조적으로 결점이 적은 제품을 연구했다. 오 사장은 연구개발 책임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 분야만큼은 직접 지휘한다.

둘째, 직원들의 숙련도 향상이다. 그는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직원들의 이직이 잦으면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없다”며 “비록 대우는 충분하지 못해도 개인적인 고민까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동종업계에 비해 장기근속자가 많은 편이다.

셋째, 무재해 사업장 유지다. 이 회사는 올해 ‘무재해 8배수 사업장’ 표창을 받았다. 전기로에서 만들어진 액체상태 알루미늄과 아연이 금형 공정으로 옮겨지고 여기에서 제품이 가공되는데 고온의 반제품이 이동되는 사업장을 무재해로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 사장이 직원들과 밤늦도록 현장을 지키는 것도 납기를 준수하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는 개성공장 가동이 중단된 뒤에는 밤 12시까지 직원들과 함께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지키는 일이 더 잦아졌다.

오 사장은 녹록지 않은 경영여건 속에서도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7명의 직원으로 연구소를 만들어 각종 다이캐스팅 부품을 개발했고 글로벌 기업에 수출했다. 그가 중소기업청장 표창, 국무총리 표창, 인천시 과학기술상 금상 등 수많은 상을 받은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다.

이 회사는 최근 국내 대기업과 손잡고 가스오븐레인지용 안전밸브를 개발했다. 오 사장은 “이 안전밸브는 자가 소비용으로 제작하는 가전업체를 제외하면 수출 등 판매용 제품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 기업의 특허가 만료되자 국산화에 나선 것이다.

그는 “이 제품을 내년 초부터 미국 시장에 내보낼 예정”이라며 “그럴 경우 연간 수출액이 1000만달러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오 사장은 100여종의 생산 제품 가운데 생산량이 너무 적거나 납품처가 먼 곳에 있는 제품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쓰고 있다. 아울러 안전밸브처럼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점 생산할 계획이다. 그는 “개성공장이 재가동되면 도약의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성중창단 만들어 활동…"기업 경영도 하모니가 중요"

개성공장 가동중단에도 '꿋꿋'…"무결점 추구 26년 신뢰 쌓으니 대기업이 먼저 나서 돕더군요"
오경택 동양다이캐스팅 사장의 취미는 중창이다. 제물포고 시절부터 남성중창에 심취했던 그는 최근 친구들과 함께 중창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남성중창은 깊이 있고 웅장한 매력이 있다.

오 사장은 “주로 친구 자녀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는데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테너인 그는 멜로디 파트를 맡는다. 중창은 화음이 생명이다. 아무리 개인 실력이 뛰어나도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면 중창은 무너진다.

오 사장은 “기업 경영도 똑같다”고 말한다. 개인의 능력보다 서로 협력하고 화음을 이뤄야 한다. 그가 종업원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원 경조사가 있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직접 간다. 직원들은 오 사장을 최고경영자라기보다는 형처럼 생각하고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 회사에는 필리핀인 등 외국인 근로자 8명이 일한다. 이들 역시 그를 친형처럼 푸근하게 생각한다. 이들 중 세 명은 이 회사에서 일한 뒤 만기 출국했으나 한국어시험에 합격해 재입사했다.

오 사장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뿌리산업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외국인은 보물처럼 소중한 사람들”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