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110년…한인사회 첫 여성 대표 된 이정순 회장
“남자들이 (한인회 운영을 놓고) 자주 싸우는 것을 보고 여성인 제가 한번 나서서 화합의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뜻에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미국 50개주 160개 한인회를 대표하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미주총연) 차기 회장으로 선출된 이정순 신임 회장(64·사진). 그는 21일(현지시간)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 탄생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동포사회에서도 여성 대표를 뽑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유진철 현 회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단독후보가 돼 제25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1903년 미국 이민 역사가 시작된 이후 여성이 교민사회의 대표가 된 것은 처음이다.

이 신임 회장은 “우리 동포들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市)정부의 공무원 조직에도 많이 진출해야 실질적인 권익 향상이 이뤄진다”며 “한인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주류사회에서 동포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는 7월 2년 임기를 시작한다.

이 회장은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지난해 중국계 시장이 당선되면서 시의 공무원 조직을 대부분 중국계가 장악했다”며 “우리 동포들이 알게 모르게 상대적으로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채용이나 승진 등에서 연줄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인들이 힘을 갖고 목소리를 내려면 뭉쳐야 한다”며 “이를 위해 총연 차원에서 정치권과 공무원 조직에 진출해 있는 한인들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후원회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이민 1.5세, 2세들의 주류사회 진출을 적극 돕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국의 국력이 강해지면 동포의 위상도 높아지고, 동포의 힘이 세지면 한국의 위상도 높아지게 된다”며 한국 정부와도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창조경제와 관련해 미국 내 인재 발굴 등 다양한 협력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남북이 갈려져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엄청난 손실”이라며 “동포사회에서도 남북 관계 개선,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1977년 남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이 회장은 식당, 부동산 중개업 등을 하면서 교민사회에 발을 넓혔으며 1999~2000년 샌프란시스코 최초 여성 한인회장으로 선출됐다. 민주평통 샌프란시스코협의회장, 미주총연의 서남부지역협의회장을 맡았으며 노무현 대통령 때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2009년 ‘히로시마 콤플렉스’란 시집을 낸 시인·작가인 정청광 씨가 이 회장의 남편이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