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가 사기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오모씨(42)와 정모씨(53)는 수억원을 빌려간 뒤 갚지 않은 혐의(특경가법상 사기)로 전 전 대통령의 조카인 조모씨(55)를 각각 고소했다.

정씨는 “조씨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1800억원이 동결돼 있는데 이를 해제하려면 비용이 필요하다’며 2007년 12월부터 2009년 9월까지 4억1500만원을 빌려갔다”며 지난해 6월 고소장을 제출했다. 오씨는 “조씨가 2008년 6월 1억원을 빌려간 뒤 잠적했다”며 2010년 12월 고소장을 제출했다.

조씨는 지난해 3월 지명수배됐다가 경찰에 붙잡혀 지난달 25일부터 이틀에 걸쳐 조사를 받았지만 같은 달 27일 새벽 풀려났다. 조씨는 경찰 조사 당시 “오씨에게는 1억원이 아니라 4000만원을 받았으며 정씨에게서도 4억1500만원이 아니라 브로커를 통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비자금 1000억달러를 가져오려고 2500만원만 받았을 뿐”이라며 “그마저도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친인척이란 이유로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전 전 대통령의 조카인 줄 몰랐다. 체포시한인 48시간 내에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일시적으로 풀어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그러나 오씨 등 피해자들이 고소장에 “조씨가 전 전 대통령의 조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적시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친인척인지 여부를 뒤늦게 확인해 ‘뒷북수사’라는 비판은 면키 어렵게 됐다. 경찰의 당초 주장대로 대통령의 친인척이란 점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씨를 놔줬을 수는 있으나 그 전에 친인척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점은 명백한 실책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조씨를 풀어주고 언론이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한 뒤인 3일 오전 부랴부랴 해당 구청에 공문을 보내 조씨가 전 전 대통령의 조카라는 점을 확인했다. 조씨는 전 전 대통령의 여동생 전점학씨(77)의 아들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