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학생 자살로 개교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KAIST가 다음주 긴급 임시 이사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다. 석 달 새 4명의 '과학 수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학내외 반발이 예상외로 커지고 있어서다. KAIST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긴급 소집되면서 학교운영 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긴급 임시 이사회 소집

8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오명 KAIST 이사장(웅진그룹 태양광에너지부문 회장)은 오는 15일 긴급 임시 이사회를 소집했다. KAIST 이사회는 당연직인 서남표 총장과 교과부 · 기획재정부 공무원 등을 포함해 각계 인사 16명으로 구성돼 있다. 교과부는 "예정된 안건 없이 이사회가 긴급하게 소집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사회는 학교 측이 발표한 '징벌적 등록금제'(학점 3.0 미만인 학부생에게 최저 6만원에서 최고 600만원의 수업료를 부과하는 제도) 폐지를 포함한 학칙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또 최근 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학생들과 소통 문제도 논의할 전망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사진의 의견을 수렴한 뒤 KAIST와 협의를 거쳐 학교 운영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이날 교내 창의관 터만홀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오후 7시로 예정됐던 간담회는 8시반에야 열렸다. 당초 특별한 제한 없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서 총장이 '언론 등 외부인이 있으면 참석하지 않겠다'며 간담회 참석을 한때 거부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외부로 내용이 알려지는 게 뭐가 무서워서 간담회를 거부하는가'는 쪽과 '대화가 중요하지 공개 · 비공개가 중요한 게 아니다'는 쪽으로 의견이 엇갈려 한 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다. 서 총장은 8시를 넘겨 간담회장에 나타나 "내부인끼리 편하게 얘기하자"며 학생들을 설득했다. 결국 간담회는 외부인들을 배제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서 총장은 '소통 부족'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일부 학생들은 서 총장의 독단적인 운영과 성적 만능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놨다. 서 총장과 총학생회는 12일 오후 간담회를 다시 갖기로 했다.

◆학교 · 총장에 비난 봇물

KAIST 안팎에서 대학과 총장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 총장은 네 번째 학생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지난 7일에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와 함께 징벌적 등록금제 폐지 방침을 밝혔다. 이마저 교육과학기술부의 강력한 권고에 따른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3월 하순부터 세 차례에 걸쳐 KAIST와 협의를 갖고 징벌적 등록금제에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학 학생은 "자살 소식이 두 번째 들렸을 때까지도 별 반응이 없었지만 세 번째,네 번째 연속 나오면서 학생들의 동요가 심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학생은 "징벌적 등록금제가 없었다면 자유롭게 많은 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마에 오른 등록금 차별

KAIST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학점 3.0 미만(4.3점 만점)인 학부생은 학점에 따라 6만~600만원의 수업료를 부담해야 한다. 서 총장이 2006년 취임하면서 도입한 제도다.

학점 미달로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은 2008년 32명(전체 학생의 4.9%)에서 2009년 611명(8.0%)으로 증가했다. 작년에는 전체의 12.9%인 1006명이 수업료를 냈다. 총금액은 26억원으로 1인당 254만원꼴이다. 성적 스트레스로 자퇴하는 학생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적 · 자퇴생 수는 2007년 53명,2008년 78명,2009년 99명,2010년 98명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건호/강현우/대전=백창현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