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락 前청장 검찰 소환에 허탈ㆍ배신감

`함바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10일 오후 검찰에 소환되자 경찰은 침통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지난주 언론을 통해 강 전 청장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만 해도 "설마 그럴 리 있겠느냐"며 상황을 지켜보자던 경찰청 고위 간부들은 "국민 보기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선 경찰서의 직원들은 "이제 수사권 독립은 물 건너간 게 아니냐. 재임 기간 그렇게 비리 척결을 부르짖던 사람이 이렇게 되니 배신감도 든다"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 수사가 끝나고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구체적으로 어떤 비리를 저질렀는지 밝혀지겠지만 강 전 청장은 그동안 검찰에 소환된 여러 전직 총수 가운데 한명으로 기록되며 개인뿐 아니라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인물로 남게 됐다.

◇"국민에게 부끄럽다" 침통ㆍ우울 = 강 전 청장이 오후 2시께 무거운 표정으로 서울동부지검 청사에 소환되는 모습을 TV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경찰청 고위 간부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강 전 청장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지 않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짧게 언급하자 "혹시" "설마" 하는 기대감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한 치안감은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

조직이 전체적으로 침통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로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후속 조치를 잘하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청 총경급 간부도 "허탈함이나 배신감, 충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직 수장이 이렇게 되는 걸 보고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나"라며 "국민 보기 부끄럽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일선 경찰서의 하위직 경찰관은 배신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검찰에 엄정한 처벌을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울 시내 경찰서의 이모 경장은 "창피한 일이다.

수사권 독립은 완전히 물건너 갔다"며 "비리 척결을 그렇게 강조하던 사람이 돈 수십억원도 아니고 식당에서 몇천만원 받아서 검찰 수사를 받다니"라며 허탈해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도 "집안이 어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며 "직원들 사이에서는 검찰에 `구속수사 하라'고 탄원서를 보내자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일선서의 과장급 간부는 "인사이동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인데 조직 전체가 허탈해 한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하면서 "비리 척결에 앞장서던 분이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되풀이된 경찰총수 `수난사' = 전직 경찰청장이 범죄를 저질러 검찰에 소환된 사례는 2009년 5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미화 2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를 받은 이택순씨가 가장 최근이다.

2006년부터 2년간 13대 청장을 지낸 그는 혐의가 사실로 밝혀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천433만원을 선고받았다.

전현직 경찰청장이 피의자 또는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나온 사례는 이것 말고도 여러차례 있었다.

제10대 청장인 이팔호씨는 2004년 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의 개인비리와 해외도피 배후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참고인으로 불려나가 조사를 받았다.

1987년 발생한 `수지김 피살사건'의 경찰 내사 중단을 주도한 혐의를 받은 9대 총수 이무영씨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누명을 벗었지만 검찰 수사를 받으며 구속되기도 했다.

5대인 박일룡씨도 안기부 1차장 재직시 북풍사건 연루 사실이 드러나 1998년 구속됐고, 4대인 김화남씨는 1996년 총선 출마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았다.

치안총수가 대거 연루된 적도 있어 1993년 기흥골프장 경영권 변칙 양도사건과 관련해 경찰청장 가운데 김원환(초대), 이인섭(2대)씨, 전직 내부무 치안본부장 가운데 박배근(9대), 권복경(12대), 김우현(14대), 이종국(15대)씨 등 모두 6명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이밖에 1980년 치안본부장을 지낸 염보현씨는 서울시장 재직시 공원공사와 관련한 수뢰 혐의로 처벌됐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때 `탁치니 억하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한 10대 치안본부장 강민창씨는 당시 사건 은폐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김동호 기자 min76@yna.co.kr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