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생활은 길었다. 장장 10년.여러 곳의 기획사를 전전하며 사기도 당했고 배신도 당했다. 기획사 오디션에 떨어진 것만 10여차례.아픈 상처 때문에 꿈을 접을까 몰래 숨죽여 울기도 했지만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 하나로 버텼다. 함께 연습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생업을 찾아 떠날 때면 마음이 흔들렸지만 오기로 끝까지 남았다.

밟히고 또 밟혀도 살아 남는 잡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10년을 바닥에서 버틴 끝에 그녀는 마침내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한쪽 눈을 가린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춘 '시건방 춤'이 인상적인 노래 '아브라카다브라'는 전 국민적인 '패러디 열풍'을 일으키며 연말 시상식에서 골든디스크 본상 등 5관왕에 올랐다. 화장을 지운 '쌩얼'에 '몸빼바지'와 '군용깔깔이'를 걸치고 시골생활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청춘불패'는 1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녀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멤버 나르샤(29 · 본명 박효진)가 주인공이다. 중 · 고생 아이돌 스타도 드물지 않은 요즘 연예계에서 보기 힘든 입지전적 스타인 그를 5일 만났다.

▼바쁠 것 같습니다.

"그룹 활동은 잠시 중단했지만 여전히 쉴 틈은 없어요. 고정출연 프로그램이 3개라 촬영일정만 따라다녀도 정신이 없죠.'아브라카다브라'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지난해에는 정말 눈코 뜰새없이 바빴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다음날 새벽 3시에 숙소로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그 1시간 동안 잠은 못 자고 씻기만 하고 나왔죠."

▼무명 시절이 길었는데요.

"고3 때인 1999년부터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면서 기획사 문을 두드렸어요. 10여차례 오디션을 봤는데 줄줄이 떨어졌죠.오디션에 합격한 곳도 몇 군데 있었지만 모두 1~2년 후에 빚더미에 올라 망하더라고요. 어떤 곳은 앨범을 내준다기에 매일 출근해 청소만 하다가 망했고,또 어떤 곳은 매일 벽만 보고 노래 연습만 시키더니 망하고 그랬죠.앨범 내줄테니 돈 가져오라는 기획사도 있었으니 그냥 망한 곳은 그나마 양반이었죠.그러다 2004년에 현재 기획사(내가네트워크)에 들어왔고 2006년에 데뷔했습니다. "

▼집에서 반대는 안 하셨나요.

"부모님은 엄청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절실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기 때문에 무작정 실용음악 아카데미에 등록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용을 댔죠.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어요. 레스토랑 서빙부터 옷가게 점원,결혼식 반주,라이브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일까지 닥치는 대로 했죠."

▼힘들었겠습니다.

"금전적인 어려움보다는 심리적인 부담이 더 컸어요. 다들 그렇지만 연습생 땐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거든요. 앨범이 나와야 가수라고 할 텐데 말이죠.매번 내년에는 앨범이 나온다고 얘기를 해도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죠.돈도 돈이지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추웠던 시절이었어요. 스물두 살 때에는 회의를 느껴 방황하다가 가출도 했어요. 친한 언니 옷가게에서 한 달쯤 시장에서 물건 떼오는 법,손님 끄는 법 등을 배웠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꿈을 꾸는 것이 사람의 존재 이유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건데 중간에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다시 돌아갔죠."

▼음악은 언제 시작했나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어요. 부모님의 꿈은 제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피아노학원 원장이 되는 거였죠.그런데 고교 시절 어느 날 인순이 선배님이 '아껴둔 우리 사랑을 위해'라는 노래를 수화와 함께 무대에서 열창하는 것을 보게 됐어요. 한마디로 '쇼킹'했죠.TV를 통해 봤는 데도 그 에너지와 열정이 그대로 전달됐어요. 이후 가수가 되는 것을 꿈꿨죠."

▼부모님이 지금도 반대하십니까.

"요즘에는 부모님이 사인을 하루에 10장씩 해달라고 해요. 친구 딸의 친구들 사인까지 받아다 줘야 한다면서요. 정말 좋아해주시죠.처음 '아브라카다브라' 뮤직 비디오가 나왔을 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약간은 선정적이었고 부모님께서 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좋아해주셨어요. '너 정말 멋있다'고 칭찬해 주셔서 기운차게 활동했죠."

▼데뷔할 땐 나이를 지금보다 낮춰서 말했지요.

"데뷔할 때 스물여섯이었는데 두 살 낮춰서 스물네 살이라고 말했죠.소속사에서 요즘 가수들과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난다고 좀 어리게 얘기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어요. 사실 무척 불편했어요. 나이 어린 동료 연예인들 만나서 언니 · 오빠라고 하기도 껄끄러웠고,팬들을 속이는 것도 제 성격상 맞지 않았거든요. "

▼방송에서 나이를 공개했지요.

"언젠가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TV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마침 기회가 생겨서 돌발적으로 얘기했어요. 소속사는 당황했지만 저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나이 공개 이후에 반응이 정말 두려웠는데 100명 중 95명은 호의적인 반응이었어요. '음악 때문에 브 · 아 · 걸을 좋아하는 것이지 나이 때문이 아니다''동안이라 놀랐다'는 등 응원해 주는 댓글이 많이 달렸죠.정말 고마웠어요. 그 뒤로는 나이 많다는 점을 부각시켜 '성인돌'이라는 애칭도 붙었죠."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청소년 10명 중 9명이 연예인을 꿈꾼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연예인을 쉽게 봐서는 안 돼요. 춤이나 노래 좀 좋아한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연예인도 프로페셔널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거든요. 가수가 무대 위에 오르는 시간은 기껏해야 5분 정도예요. 그 5분을 완벽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50시간,아니 500시간 동안 피눈물나게 연습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절대 전부가 아니죠.연습하는 그 시간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아요. 오랜 무관심과 냉대를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절실하게 이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한 뒤 결정해야 해요. "

▼언제까지 가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공연을 하면 정말 힘을 많이 받아요. 군 부대에서 공연하면 거의 기절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주시죠.그럴 때면 정말 행복해요. 여태껏 단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진짜 신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죠.인순이 선배님처럼 오래도록 무대에 서는 가수로 롱런하는 게 꿈이에요.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니까요. "

글=박민제/사진=정동헌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