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26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단계적 시행 가능성을 밝힘에 따라 노동부가 마련 중인 행정법규의 윤곽이 어렴풋이나마 드러나고 있다.

임 장관은 앞서 25일 노 · 사 · 정 6자회의가 최종 결렬된 직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에 따른 세부 지침을 담은 행정법규를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단계적 시행' 방침 역시 행정법규에 담길 내용을 임 장관이 미리 언급한 것이다. 노동부는 이미 지난달부터 행정법규 마련에 들어가 초안을 어느 정도 짜놓은 상태다. 정부가 노동계 및 재계 등과 극적 타결을 하거나 국회에서 새로운 개정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사실상 이 행정법규대로 제도가 시행된다. 이 때문에 재계와 노동계에서는 행정법규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임 장관은 "위법,위헌 논란이 없도록 꼼꼼히 준비할 것"이라며 "노사가 법 시행에 따른 연착륙 방안을 제안하면 이를 행정법규에 반영하겠다"고 밝혀 행정법규의 최종 발표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복수노조 허용

복수노조와 관련해 행정법규에 중점적으로 담겨진 내용은 과반수 교섭대표제다. 복수의 노조가 있을 경우 먼저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를 뽑도록 하고 일정 기간 내에 합의가 안 되면 조합원 수 과반 이상인 노조가 교섭대표를 맡는 방식이다. 과반 이상 노조가 없으면 노조끼리 공동교섭단을 구성하게 된다. 교섭대표를 구성하지 않는 한 노조가 교섭을 제안하더라도 기업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법 시행 후 복수노조 난립에 따른 개별 사업장의 혼란은 노동위원회가 맡아 조정한다. 노동부는 이를 위해 노동위원회의 부문별 위원회로 '교섭단일화 위원회(가칭)'를 신설하는 내용의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노동위원회는 노사 양측이 과반수 교섭대표제에 따라 교섭창구를 단일화했는지,과반수 교섭대표를 공정하게 선출했는지,교섭 단위는 적정한지,교섭대표가 공정대표 의무를 올바르게 수행하고 있는지 등을 판단해 교섭에 따른 갈등과 혼란을 조정한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노동부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따른 노조 재정 확충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행정법규에는 이날 임 장관이 밝힌 대로 단계적 시행 방안이 우선적으로 담길 전망이다. 일부 노조 업무에 대해 업무시간으로 계산해 임금을 주는 타임오프제 도입도 유력하다. 또 노사가 공동으로 출연하는 노조자립기금 확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모 대기업 계열사인 L사가 시행 중인 방식이다. 조합원 수 1000여명인 L사 노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작년까지 전임자를 3차례에 걸쳐 축소했다. 17명이던 전임자는 현재 5명까지 줄었다. 대신 1명 줄일 때마다 회사는 '임금+α'로 1억원의 기금을 출연했다. 노동법에서도 전임자 임금 지급은 금지하지만 후생자금이나 기금 기부 등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중소기업 노조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전임자를 지원한다는 비난을 살 수 있는 데다 입법 사항이어서 노동부로서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