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주머니 사정에 신종플루로 흥청망청 자제
경기회복속 기업체 호텔 연회장 예약률은 높아


사건팀 = 5년차 직장인 김모(33)씨는 며칠 전 대학 동기를 만났다가 올해도 송년회를 건너뛰자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연말 분위기가 잔뜩 위축됐던 작년에 이어 송년회가 또 취소돼 아쉽기도 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썩 좋지 않은 데다 이미 자녀를 둔 친구들은 신종플루를 핑계로 모임 자체를 꺼리고 있어 선뜻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
김씨는 "대학 동기 모임뿐만 아니라 고교 동창들도 올해는 송년회를 안 하려고 한다"며 "남은 건 회사 송년회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불필요한 지출을 자제하자는 방침에 따라 작고 조용한 자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 시민사회에 따르면 연말을 앞두고 김씨처럼 송년회를 아예 취소하거나, 하더라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하자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마모(37)씨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모이는 날짜를 맞추려 연락이 오곤 했는데 올해는 송년회와 관련해 아직까지 전화를 한 통도 받지 못했다"며 "그냥 이러다가 해가 저물지 않을까 싶다"며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이모(54)씨는 "회사에서는 `그래도 송년회를 하기는 해야지'라는 여론이 많지만 예전처럼 술을 심하게 먹기보다는 차분하게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간단히 한잔씩만 하는 쪽으로 갈 것 같다"고 했다.

홍모(25.여)씨도 "예전에는 연말에 한번 정도는 돈을 쓰고 기분도 내면서 하루를 보냈지만 올해는 조용하게 평소에 못보던 친구와 만나 인간적 소통이나 관계를 다지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작년보다는 경제상황이 다소 나아졌음에도 올해 망년회가 여전히 조용한 분위기로 가는데는 꺾이지 않는 신종플루의 기세도 한몫했다.

회사원 최모(27.여)씨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 많은데 가기도 싫지만 올해는 신종플루 때문에 더욱 그렇다"라며 "남자친구와 조용히 여행이나 다녀올까 생각중"이라고 전했다.

주부 김모(60)씨도 "이달 말 서해안 콘도를 잡아 친정쪽 가족이 모두 모이는 행사를 송년회를 겸해 하려 했지만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면 아무래도 신종플루 전염이 걱정이 돼 취소했다"고 말했다.

술독에서 연말을 보내지 않으려는 풍조로 회사 동료끼리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을 본 뒤 2차로 와인을 마시면서 친목을 다지는 사례도 많지만 가까운 지인들과 여행을 통해 한해를 정리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공무원 박모(27.여)씨는 입사 동기 9명과 크리스마스 전후로 회사의 스키장 콘도를 잡아 송년회를 할 예정인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다음달 5일 대학 친구들과 함께 1박2일 MT를 가기로 한 또 다른 박모(30)씨는 "여느 때처럼 술만 진탕 마시기보다는 함께 산사를 걷고 온천도 하면서 항상 함께 했던 망년회의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일반 시민들이 학교 동문회나 친구들의 사적인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인 반면 기업 차원에서 호텔을 빌려 대규모로 연말 행사를 하는 경우는 오히려 늘었다.

서울 시내 주요 호텔에 따르면 다음달 연회장 예약은 지난해 수준을 넘어 이미 가득찬 곳이 대다수일 정도로 신종플루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해보다 행사가 많고 공간이 부족해 예약을 다 받기가 힘든 상태"(신라호텔)라거나 "연회장 규모와 관계없이 빡빡하게 찼다.

신종플루 때문에 예약이 취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웨스틴조선호텔)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 관계자는 "작년에는 경기가 좋지 않아 기업체에서도 연말 모임을 거의 안했는데 올해는 경기 회복세 때문인지 각종 모임이 늘고 있다"며 "조만간 12월 예약이 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