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품을 한번 찾아보죠."

지난 29일 인천시 동구 화수동 두산인프라코어 공장.공장 한쪽에 자리잡은 기숙사 건물에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격론을 벌였다. 공작기계에 들어가는 홀더 부품의 납품업체를 두고 의견 충돌이 생긴 것.현장 기술자들은 값이 비싸더라도 기존의 독일 제품을 계속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5년 전에 국산 제품을 썼다가 시운전 과정에서 진동이 생겨 정교한 작업을 망쳐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지표 네오플럭스 이사(40)의 생각은 달랐다. 가격이 20~30% 비싼 수입 제품을 계속 쓰는 것은 아무래도 낭비라고 판단했다. 두 시간여의 격론 끝에 일단 국산 제품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홍 이사의 '승(勝)'.그는 국내 업체가 지난 5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실패의 원인을 보완한 신제품을 내놓은 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공장에서는 관행적으로 수입품을 쓰면서 비슷한 성능의 더 싼 제품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결국 부품 교체를 통해 두산 인프라코어는 한 해 10억~20억원의 원가를 절감하게 됐다.

홍 이사의 직업은 '오퍼레이션 컨설턴트'.개별 기업들이 비용을 절감하고 최적의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이다. 해마다 수백억,수천억원이 투입되는 대기업의 생산과정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촘촘히 해부해 불필요한 낭비를 제거한다. 사람으로 치면 군살 없이 탄탄한 '몸짱'을 만들어 주는 '트레이너'인 셈.두산 인프라코어의 군살빼기에 여념이 없는 홍 이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전에 건설회사에서 일하셨다면서요.

"대학(연세대)에서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처음 입사한 회사가 해외 공사현장이 많았던 쌍용건설이었죠.싱가포르에서 2년,말레이시아에서 3년,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고생 좀 했죠."

컨설턴트와 건설회사 현장관리는 많이 다른 분야인데요.

"해외 공사현장에 나가 있으면 각국의 건설회사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어요. 한번은 병원을 짓는 현장에서 일본 건설회사와 같이 일을 하게 됐죠.오바야시건설이라고,일본에서 다섯번째로 큰 회사였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에선 상무급 임원이 하는 일을 그 회사에선 차장이 하더라고요. 젊을 때 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체계가 잡혀 있는 게 부러웠죠.그래서 외국계 회사로 옮기려고 1999년에 사표를 냈어요. 공부를 더 하려고 도쿄대 입학 허가서까지 받았는데 헤드헌팅 회사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네오플럭스로 오게 됐어요. 공대 출신의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기에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싶어 원서를 냈죠."

생소한 분야의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실제로 해보니 정말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저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오퍼레이션 컨설턴트는 한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영역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이게 웬 떡인가 싶었죠.중공업,건설업,소매업 등 그야말로 종횡무진입니다. "

일반 컨설팅과 오퍼레이션 컨설팅은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적인 컨설팅은 전략 컨설팅을 말하죠.회사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역할이죠.이에 비해 오퍼레이션 컨설팅은 좀 더 세분화된 분야예요. 기업의 구매 · 생산 · 설계 단계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즉 전략에 맞게 실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거죠.기업 현장의 실질적 개선방안을 놓고 고민하므로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이 4~5년 이상의 현장 실무경험을 갖추고 있어요. "

현장 직원들과 마찰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이 현업에 계신 분들의 반발이에요. 건축과 나온 사람이 철강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식이죠.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왜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매일 하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개선하려는 감각이 떨어져요. 그러나 어느 기업이든 업무 진행상 10~15%의 낭비요소는 반드시 갖고 있어요. "


우여곡절 끝에 낭비요소를 찾아내 목표를 달성하면 뿌듯하시겠어요.

"한번은 어느 철강회사에서 쇳물을 끓이는 데 들어가는 부재료인 석회를 놓고 제강팀장과 크게 논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가격이 싼 대신 칼슘이 몇 퍼센트 적게 들어간 것을 쓰자고 제가 제안했거든요. 기술연구소에서도 괜찮다고 하는데 제강팀장은 공정에 이상이 생길까봐 극구 반대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논쟁 끝에 '앞으로 네가 쇳물 끓여라'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어요. 그래서 제가 따라 나가서 같이 소주를 한잔하며 설득했어요. 결국 그 분이 테스트에 동의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와 원가를 10%가량 절감했죠."

현장 실무자보다 컨설턴트가 업무에 대해 더 잘 알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희는 제너럴리스트예요. 고유기술은 당연히 그 기업에 계신 분들을 뛰어넘을 수가 없죠.하지만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시야가 넓은 우리가 스페셜리스트예요. 이 산업의 프로세스를 다른 산업에 적용해 보는 등 다양하게 응용하는 능력이 있거든요. 어떤 회사든 한 달 안에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저희는 갖고 있어요. "

기억에 남는 사례 좀 소개해 주세요.

"2001년에 어떤 철강회사를 컨설팅했을 때였어요. 매출이 1조7000억원인데 영업이익이 50억원 정도였어요. 지방에 있는 공장에 가보니 낭비투성이였죠.일단 운송비용부터 절감하기로 했어요. 철근과 형강을 운송하는 차가 수도권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빈 차로 오는 거예요. 그래서 가급적 빈 차로 다니지 않게 운송망을 조정하고 하도급 시스템을 직거래 방식으로 바꿨죠.그것만으로 연간 100억원 정도의 절감 효과를 냈습니다."

업무 효율은 어떻게 높여줍니까.

"가령 김치 만드는 회사의 수급 전략을 짠 적도 있습니다. 매출이 2000억~3000억원 정도인 회사였는데 1조원 프로젝트를 세웠죠.그런데 생산량을 2~3배 늘리려면 배추 수급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10명의 수급팀이 배추 생산지로 내려갔죠.4개월 동안 농민들을 직접 만나서 직거래망을 구축해 문제를 해결했죠."

기업들의 공통적인 낭비요인이 있나요.

"관성적 낭비요인을 깨는 게 중요해요.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 협력업체와는 자연스럽게 유대관계가 생기거든요. 그러면 더 좋은 제품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돼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그래서 일반 직원들이 회사를 자기 거라고 생각하도록 컨설팅을 하면서 강조합니다. 인터넷에서 자기 돈으로 100만원짜리 물건을 사려면 며칠 동안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하지만 회사 돈으로 산다면 그러지 않거든요. "

실패한 경험도 있습니까.

"50억원짜리 공사를 25억원에 수주한 건설업체에 대해 원가절감 컨설팅을 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어요. 전문적인 시공업체에 맡기면 50억원이 들지만 공사를 15개 정도로 나눠 분야별로 공사수행 능력이 있는 회사에 발주했더니 비용은 맞춰졌어요. 하지만 미녀들의 장점만 따서 사진을 합성하면 추녀가 나오는 것처럼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비용은 맞췄지만 공사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졌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컨설팅을 하면서 어떤 업종,어떤 기업이든 전공에 상관없이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10년 후에는 어떤 분야든 전문 경영인이 돼 있을 겁니다. "

글=박민제/사진=정동헌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