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동국대 불교학술원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버스웰 UCLA교수(56)는 한국학자보다 한국불교를 더 잘 아는 전문가다. 지난 35년간 신라시대의 원효대사와 고려시대 지눌의 법어 연구에 매달렸고 요즘은 원효의 전서를 완역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임명 당시 불교계의 알 만한 사람들은 "그만큼 한국불교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며 환영했지만 불교계 밖에서는 "외국인이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1년 임기의 불교학술원장을 맡은 지 3개월째로 접어든 그는 파안대소로 서울 장충동 숙소를 찾은 기자를 맞았다. 어눌한 한국말에 평범한 미국인 모습인 버스웰 교수는 21살 때 우연히 만난 한국불교와의 인연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재미교포인 아내 크리스티나 버스웰씨(47 · 한국명 이영주)가 차(茶)를 내밀며 동석했다.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됐나.

"이야기하자면 길다. 어렸을 때부터 철학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 때는 니체와 쇼펜하워 같은 서양 사상가들에게 심취했다. 그러나 이들은 내게 실천 원리에 대해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양사상,특히 불교로 관심이 옮겨갔는데 불교의 참선이 해답이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 직후인 19살에 태국 방콕으로 건너가 출가했다. "

▼어떻게 한국 불교와 연을 맺게 됐나.

"태국은 소승불교의 나라다. 탁발을 하며 사람들과 부대끼게 되는데 언어 ·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21살이던 1974년 우연히 해인사 스님들과 만나게 됐는데 대승불교에 매력을 느꼈다. 스님들께서 소개해준 대로 전남 순천 송광사에 갔다. 거기서 방장이던 구산 스님 문하에 들어가 '혜명(慧明)'이라는 법명을 받고 5년을 지냈다. 밝게 빛나는 지혜라는 뜻이다. "

▼말은 통했나.

"전혀 안 통했다. 한국말은 한 단어도 몰랐다. 하지만 참선을 했으니 말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일체 말을 하지 않는 수행방식인 묵언수행을 많이 했다. 사실은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눈 떠서 해가 질 때까지 한국에 대한 책을 읽고,조금씩 이해하고,조금씩 좋아하게 됐다. "

▼뭘 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된 건가.

"'화두'가 어떻게 생기는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지나서는 선불교와 화엄불교에 대한 책,특히 한문으로 된 지눌의 법어 등을 읽기 시작했다. 화두를 들고 하는 선을 '간화선'이라 하는데 나는 중국 선사인 조주의 '무(無)' 화두를 들었다. 있다는 것이 없다는 뜻이지.아리송하다. 옛날 중국에서 한 불자가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사실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답은 '있다'가 맞다. 하지만 조주스님이 '없다'고 했다. 왜 그렇게 답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

▼참선하며 무언가 깨달았나.

"동안거 · 하안거 기간에 묵언수행을 3개월씩 한다. 나머지 기간엔 여러 사찰을 도는 '만행'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그런데 나는 동안거 · 하안거가 끝난 후에도 선방에서 계속 앉아서 수행하며 1년반가량을 지냈다. 한 스님께서 들어와서 '이해하는구나'라고 하셨다. "

▼정말 이해했나?

"글쎄 말이다. "(한국어 '글쎄 말이다'는 그와의 대화에서 10번도 넘게 튀어 나왔다. 긍정에 가깝지만,다소 모호하게 대답하고 싶을 때 주로 사용하는 듯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윤회해서 아내와 다시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글쎄 말입니다'라고 답해 아내의 원망을 샀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른 탓이었다. 그는 "긍정적인 뜻으로 대답한 것이었다"며 아내를 달래려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학문으로 돌았다. 왜 종교인의 삶을 버렸나?

"구산스님이 보조국사(지눌)의 법어를 영어로 번역하라고 했다. 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간화선)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스승께서 하라 하시니 '4개월 안에 끝낼 수 있다면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4개월 후에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남아서 1년반 동안 더 번역을 하고 그걸 출판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승복을 입고 다녀서 주위에서 '몽크(monk · 중)'라고들 불렀다. 그러던 중 UC버클리에서 열리는 불교 세미나에 참가했다. 그때 종교인보다 학자 기질이 더 많다는 생각을 했고,환속하기로 결정했다. 승복을 벗고 학자로 UC버클리에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별명이 '몽크' 대신 '엑스-몽크(ex-monk)'로 바뀌었을 뿐 '희한한 녀석'이라는 시선은 없어지지 않더라.미국에 불교 연구자,특히 한국 불교 연구자는 하나도 없던 1979년이었으니까. "

▼출가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가족들은 많이 반대했다. 고집을 부려 출가를 강행할 때도 금방 돌아오리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려 7년6개월간 출가했으니 가족들의 예상을 보기좋게 벗어났다. 승복을 입고 미국에 돌아가 고향을 찾았을 때 아버지께서 '죽은 아들이 돌아오는 것 같다'며 반기셨다. "

▼재미교포 아내와 인연은.

"44살이던 1997년 동국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통역으로 일하던 아내와 만났다. 20여년 전에 보조국사의 법어를 영역한 책을 냈는데 아내가 그 책을 읽었더라.넉달가량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했고,1999년 46살에 독신을 깨고 결혼에 성공했다. 아내는 정말 미인이다. 우리는 함께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기도 하다. 서로 도와주고 보완이 되는 관계다. "

▼최근 쌍용차 사태를 비롯해 한국 사회 곳곳에 갈등이 넘쳐 흐른다. 불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야 갈등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은 집착에서 오는 것이고 그걸 버려야 한다. (이 대목에서 크리스티나는 "사회에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은 사적인 집착에 있다. 예를 들어 시위를 한다고 하면 처음 시위를 시작할 때의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위 과정에서 개인적인 집착이 끼어들고 '내가 상대방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연결된다. '나는 맞다'고 생각하는 한 끝이 없다. 언제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집착을 버리는 것만이 해답이다. "

▼동국대 불교학술원장으로서 무엇을 할 계획인가.

"한국 불교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여러 원효대사 전집 5권 중 2권을 영역하고 있는데 거의 마무리 단계다. 내년 여름에는 동국대에서 '선(禪)'에 대한 국제 학술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세계 각국의 불교학자들을 초청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티베트 베트남 등 7개 국어의 불교용어 발음을 실은 불교사전도 만들고 있다. "

▼한국과 한국 불교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태어나기는 미국서 태어났지만 나를 길러낸 것은 한국이다. 마음의 고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 불교는 나의 업(業)이고 나의 인연이다. "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