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방금 나 눈 감았어요. 다시 찍어 주세요. "

둥근 모자에 안경을 낀 듯한 아가씨가 사진사에게 재촬영을 요구한다. 사진사를 바라보며 등을 돌리고 서 있어 아가씨가 무슨 안경을 끼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진사는 '네네.찍습니다~ 하나~' 하면서 다시 사진을 찍는다. 이때 사진사의 옆으로 '물음표+느낌표(? ! !)'가 커다랗게 찍히며 만화가 갑자기 끝난다. 다시 살펴보니 사진사 앞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는 아가씨의 눈가에 짙은 선글라스가 씌워져 있다. 그제서야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

검색 포털 야후의 '카툰세상'(kr.news.yahoo.com/cartoon)에 연재 중인 인터넷 만화(웹 코믹스 · Web comics) '이차원 개그'는 항상 이런 식이다. 단 두 컷에 담긴 반전이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때로는 만화를 다 보고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고민하기도 한다.

'2차원 개그'는 야후 카툰세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만화 중 하나다. 1주일에 세 차례 연재되는데 평균 페이지뷰(PV)가 20만건을 넘는다. 단 두 컷이다 보니 스크랩하기에도 부담이 없어 인터넷 사이트마다 '짤방'(짤림 방지용 그림)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만화를 그리는 작가 '마인드C'(본명 강민구 · 32)를 지난 6일 오후 서울 삼성동 야후코리아 본사에서 만났다. 부산에 살고 있는 그는 인터뷰를 위해 이날 오전 KTX를 타고 서울에 왔다.

▼2차원 개그의 컨셉트를 잠깐 소개해 주시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언어 유희와 반전 개그입니다. 요즘 독자들은 워낙 똑똑해서 네 컷만 돼도 반전을 금세 예측해냅니다. 하지만 저는 단 두 컷의 만화로 반전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죠.예전에 한 독자가 제 만화에 대해 댓글을 달았는데 '말로 하면 왕따,그림으로 보면 대박'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

▼댓글도 자주 보시나 봐요.

"항상 체크합니다. 어떤 댓글에는 제가 다시 댓글을 달기도 해요. 같이 노는 거죠.이런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물론 악플이 달리기도 하지만 워낙 단련(?)이 된지라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만화와 상관 없이 인신 공격을 하거나 '돈 좀 벌었더니 배가 불렀네'라는 식으로 모멸감을 주는 악플에 대해서는 화가 나기도 하죠."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는지.

"생활의 모든 곳에서 얻습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어떤 반응이 재밌을까 궁리하다 보면 번쩍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수첩에 꼬박꼬박 메모해 두죠.이렇게 저장한 아이디어만 해도 사실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

▼만화가답지 않게 몸이 건장하네요.

"제가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요. 만화가 하면 비실비실한 이미지를 많이 연상하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기도 하고요. 사실 만화를 그리는 시간보다 운동하는 시간이 더 많아요.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기본이고 운동하다가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를 때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머리도 맑아지거든요. "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했다면서요.

"예.2002년 남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 학점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실기를 잘해서 4학년 때 지도교수님 회사에 스카우트됐지요. 이후에도 회사를 옮겨다니며 디자인 관련 일이라면 뭐든지 다 했습니다. 캐릭터나 의류 디자인도 했고 출판사에서 일러스트 디자인도 했지요. 직접 디자인 회사를 차려 3년간 경영을 해 보기도 했어요. "

▼어쩌다 만화를 그리게 됐습니까.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곧잘 그리기도 했고요. 만화책을 보면서 '어~ 이건 내가 더 잘 할 수 있겠는데' 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러다 평소 군대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뒀던 '군바리 스토리'가 2003년 한 포털 사이트의 만화공모전에 입선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지요. 한동안 디자이너와 만화가를 병행하다 2006년부터는 디자인을 그만두고 전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디자인은 왜 그만뒀나요.

"디자이너로 일을 하려면 관련 업체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직접 회사를 차려 경영을 해야 합니다. 저도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 하지만 저는 체질상 조직 생활이 맞지 않았어요. 조직에 있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사내 정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또 직접 경영을 해 봤지만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습니다. 반면 만화가는 자기 혼자만 잘 하면 되고 그에 따른 성과와 책임도 혼자 지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편해요. "

▼디자인과 비교할 때 만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보다 직설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이죠.디자인은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하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가 않아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10%도 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하지만 만화는 텍스트를 결합하면서 디자인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거든요. 사실 어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제 성격과도 잘 맞아요. "

웹 코믹스와 출판 만화는 어떻게 다른가요.

"만화를 구현하는 기술적인 차이 외에는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은 만화가 책으로 출판돼 팔리기도 하고 거꾸로 출판 만화를 웹으로 서비스하는 포털이나 인터넷 사이트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만화 업계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만화 시장 자체는 저변이 계속 확대되고 있어요. "

저작권 침해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요.

"사실 저는 제 만화를 언제든지 무료로 퍼가라고 합니다. 만화 업계가 저작권 문제를 들먹이는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비겁한 행동입니다. 만화를 제대로 그리지도 못하면서 수익만 챙기려고 하는 거죠.누가 보더라도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그게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면 책,영화,연극 등 다른 매체로 확산돼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거든요. 실제 강풀씨 같은 경우도 그렇게 성공한 케이스죠."

만화는 주로 언제 그리나요.

"다른 만화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저 역시 주로 밤에 작업을 많이 합니다. 보통 밤 11시부터 시작해 새벽 5시까지 일합니다. 그리고 나서 점심 때까지는 푹 자요. 오후 시간에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운동을 하거나 다른 업무를 봅니다. 만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일이다 보니 일반 직장인들처럼 시간에 좇겨 살지는 않아요.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죠."

앞으로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은가요.

"어떤 예술 작품을 남기기보다는 사람들이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온갖 폼을 다 잡고 먹어야 하는 프랑스 코스 요리보다 집에서도 손쉽게 끓여먹을 수 있는 라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만화를 그릴 것입니다. "

만화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요.

"사실 만화가는 외로운 직업입니다. 실력이 있다면 누구든 인정받을 수 있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이기도 하죠.저는 만화가로 전업할 무렵 모 대기업에서 연봉 7000만원을 줄 테니 디자인 팀장으로 오라는 제의를 뿌리치고 이 길을 택했습니다. 이곳에서 성공하려면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끝까지 한우물을 파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겠죠."

글=이호기/사진=정동헌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