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그동안 각종 비리나 조합원 간 갈등 등 고질적인 문제를 겪어온 재개발 · 재건축 사업에 '공공관리자 제도'를 전면 도입키로 했다. 시는 이를 통한 재개발 사업의 첫 시범지역으로 성동구 성수동 72 일대 '성수 전략정비구역'(65만9190㎡)을 선정했다. 다만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법제화 작업이 필수적이어서 향후 법령 개정 과정에서 건설사 등 각종 이익단체나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방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시 주거환경 개선정책 실행계획'을 1일 확정,발표했다.

◆공공관리자 제도 전면 도입

계획에 따르면 구청장이나 SH공사,주택공사 등이 공공관리자를 맡아,재개발 사업을 관리할 정비업체를 선정하도록 했다. 아울러 정비계획 수립,조합설립,사업시행인가 및 시공사 선정 단계까지 사업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공공관리자 제도'는 현재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거나 구성됐더라도 정비구역 지정단계에 이르지 않은 329개 재개발 · 재건축 구역에 적용이 의무화된다. 시는 아울러 정비구역 지정을 받았거나 조합이 설립된 155개 구역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사업자금 저리융자 등의 인센티브를 줘서 공공관리자 선정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올초 한강변 초고층 통합개발 대상지역(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한 성동구 성수동 72-10 일대 한강변 노후 주택지에서 공공관리자 제도를 처음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공공관리자는 성동구청장이 맡기로 했다. 구청장은 이에 따라 정비업체를 직접 선정해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위 구성 때까지 사업 운영비 등을 부담하게 된다.

서울시는 이 같은 제도 시행에 따라 분담금이 1억원 이상 낮아져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시는 예를 들어 조합원 660명,1230세대 기준으로 99㎡(30평)형대 아파트의 경우 총 사업비가 20% 정도 절감되며 각 조합원 분담금은 1억원 이상 낮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아울러 공사기간도 1~2년가량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는 이 밖에 조합 임원을 선출할 때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해 투명성을 높이고 모든 재개발 · 재건축 정보를 망라한 '클린업'홈페이지를 연내 오픈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정비 용역업계 활성화 기대

공공관리자는 사업 초기 개발이익을 노린 (가칭)추진위가 난립하면서 각종 비리가 일어나고 사업 비용이 높아지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가칭)추진위마다 시공사나 정비업체가 붙어 주민 동의를 받기 위한 과당 경쟁이 일어나고 구청 승인의 요건인 과반수 확보를 위해 동의서를 사고파는 일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시는 이 같은 일을 막고자 정비업체를 구청장이 직접 선정하도록 했다. 현재 서울시내에 정비 용역업으로 등록된 업체는 총 235곳.이 가운데 70~80%는 단 1건의 사업도 수주하지 못한 채 유명무실화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동안 건설사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영세 정비업체에도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비업체 주도로 실시될 구역 내 현황 조사 및 동의서 징구,운영비,인건비 등 각종 비용은 서울시나 구청이 전액 부담하도록 했다. 아울러 추진위 승인 이후 설계비 등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금(서울시 조성)을 통해 저리로 융자받을 수 있게 된다.

◆향후 실현 가능성은

이번 계획의 실현을 위해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토해양부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령 개정을 통한 전국적인 제도 개선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시를 제외한 경기도 등 지자체는 재정이나 인력 여건이 서울시와 차이가 많이 나고 주택협회 등에선 민간 영역의 축소를 우려해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다른 지자체와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호기/장규호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