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지난 26일 통과시킨 기후변화 법안을 둘러싸고 새로운 보호무역 장벽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보호주의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미 상공회의소는 무역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논란이 되는 하원 법안의 보호무역 관련 독소조항은 민주당 지도부가 표결 전날 밤 끼워넣었다. 2020년부터 이산화탄소 등의 지구 온난화가스 배출을 제한하지 않는 국가들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미 대통령이 광범위한 조정조치나 (보복)관세를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대통령은 의회에서 명백한 승인을 받을 경우에 한해 관세를 면제토록 했다. 이 조항을 발의한 의원들 중 한 명인 민주당의 센더 레빈 하원 무역소위원회 위원장은 "미국과 상응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국가로 인해 미국의 동종업계가 불리한 경쟁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소조항의 삽입은 온실가스 배출산업이 몰려 있는 지역구 하원의원들의 찬성표를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문제는 상원이 마련 중인 독자 법안에서도 비슷한 조항을 담고 있는 것이다. 상원의 바버라 박서 환경 · 공공사업위원회 위원장은 "하원의 무역관세 조항은 우리 위원회가 통과시킨 내용과 유사하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세계경제가 깊은 침체기인 데다 글로벌 무역이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는 때에 다른 국가에 보호주의 신호를 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세부과 접근이 아닌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제지,유화,정유,유리업체 등 온실가스 배출규제 대상인 기업이 그렇지 않은 개발도상국 기업에 비해 불리해질 수 있지만 수입관세 부과는 자칫 반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미 상공회의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지난 24일 하원 세입 · 세출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입관세 조항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인 미국이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으며,무역전쟁을 초래할 수 있어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상의는 아울러 "수입관세 조항을 유지하면 오히려 미 수출업체들은 다른 국가로부터 보복을 당하고,수입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지난 4월2일 주요 20개국(G20) 런던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신규 무역장벽 설치 자제 합의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의회는 하원에서 마련된 법안과 상원의 입법안을 절충해 오는 8월 하계 휴회에 들어가기 전에 최종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미국과 함께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꼽히는 중국의 언론들은 수입관세 조항이 미국이 선진국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법이라고 비난했다. 유럽연합(EU)이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의 20% 감축을 약속한 것과 달리 미국은 4% 정도만 감축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편 미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자동차 연비 규제안도 기후변화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오바마 정부는 2016년까지 갤런당 35.5마일(ℓ당 15.0㎞) 이상이 되지 않는 자동차는 미국 내에서 판매를 규제할 방침이다. 현재 평균 연비는 갤런당 25마일(10.5㎞)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