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카메라,넷북,PMP 등 새로운 기능과 속도를 내세운 디지털 제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요즘,이 흐름에 거슬려 아날로그적 감성을 즐기며 사는 이들이 있다.

'사진발' 받을 만한 장면을 봤을 때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 드는 사람들 가운데 아이 장난감 같은 '똑딱이'를 끄집어 내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옛 소련에서 첩보용으로 만들었다는 로모 카메라다. 국내에는 3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로모프렌즈'(http;//cafe.naver.com/lomofriends)와 회원수 2500명의 'Cafe,Romo is not Lomo'(http;//cafe.daum.net/LOMO) 등 네이버와 다음에 40여개의 크고 작은 로모카메라 동호회가 있다. 이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출사 모임을 갖고 수시로 자신의 작품을 카페에 올려 디지털 속에 '아날로그의 향기'를 전한다.

동호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둔 로모카메라 마니아들의 모임 '로모그래피'의 한국지사인 '로모그래피 갤러리숍 서울'(http;//www.lomography.co.kr)이 홍익대 부근에 있다. 이곳에서는 로모카메라를 장만한 사람들을 위해 워크숍과 함께 출사를 진행한다. 로모카메라의 대표 모델인 'LC-A'는 다음달 19일 출시 25주년을 맞는다. 로모그래피는 이를 기념해 3000여장이 실린 664쪽 분량의 25주년 기념북을 출간했다. 홍대 앞에 있는 로모그래피 갤러리숍 서울을 포함 비엔나,뉴욕,파리,홍콩,도쿄,상하이 등 전세계 로모그래피 숍에서 이날 동시에 공식 파티를 진행한다. LC-A의 역사소개,작품전시,퀴즈대회와 함께 영국 BBC에서 제작한 LC-A 특별 다큐멘터리도 상영될 예정이다.

로모그래피 회원들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원칙들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밤낮없이 찍어라','엉덩이 높이에서 찍어라','대상에 가능한 가까이 다가서라','보이면 찍어라','로모는 삶의 일부다'.

카메라에 로모가 있다면 펜에는 흔히 '깃털펜'으로 불리는 퀼펜이 있다. AD 700년께 처음 등장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된 필기도구로 알려져 있다. 퀼(quill)은 조류의 깃에서 털이 가지런히 달라붙은 부분으로,뼈처럼 단단하고 속이 빈 '대'를 뜻한다. 그래서 'drive the quill'이라 하면 '글을 써내려간다'는 뜻이고,문필가를 'quiller'라고 부른다.

가장 강한 깃털펜은 봄철 새의 왼쪽 날개 끝에서 다섯번째 것이다. 왼쪽 날개는 깃털이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형태가 오른손잡이에게 적합하다. 거위털이 가장 많이 사용됐고,백조털은 귀하고 비싸다. 세필용으로는 수탉의 깃털을 최고로 치며,독수리 부엉이 매 칠면조 등의 깃털도 자주 사용된다.

퀼펜의 대표 브랜드는 이탈리아 '루비나또'.1950년 이탈리아인 프란체스코 루비나또가 이탈리아 북부 트레비소에서 문구 · 사무용 제품 판매점을 연 것이 시작이다. 만년필 수리,예술적인 제품에 애정을 가졌던 그는 많은 고객들이 엔티크 필기류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다양한 깃털펜,천연 수제 잉크 등을 제작했다. 현재 영국,독일,프랑스,일본,미국 등 세계 1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과 '베스트펜'(www.bestpen.co.kr),'펜앤잉크'(www.pennink.co.kr) 등 인터넷 문구몰에서 살 수 있다. 이 제품을 독점수입하는 신한커머스의 최철호 차장은 "주고객은 미술,음악계 종사자나 교수 등이며 선물용으로 선호한다"고 말했다. 입소문을 타고 한 자루에 3만~7만원이나 하는 고가 펜이지만 지난해 2만여 자루가 판매됐다. 멋진 선물을 건넨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펜과 인장,잉크케이스,펜스탠드 등으로 구성된 15만원짜리 세트가 추천 아이템.

손으로 글을 쓰는데 취미가 없는 '아날로거'에는 타자기를 권할 만하다. 1874년 미국 총기회사 레밍턴이 첫 제품을 냈으며,한글 타자기는 서울 종로 공안과의 창립자인 고 공병우 박사가 1949년 개발한 '공병우 타자기'가 효시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G마켓,11번가 등 온라인몰이나 황학시장,회현역지하상가 골동품점 등에서는 아직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최근까지도 사용되던 워드프로세서 전자타자기부터 1920~30년대 사용되던 영문타자기와 레밍턴 타자기(125만원)도 매물로 나와 있다. 공병우 타자기는 45만원,가장 많이 쓰이는 케드콤의 TQ-12A 전자타자기는 26만원에 살 수 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