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이 대학과목을 미리 수강하면 대학 진학 이후 해당 학점을 인정받는 '대학과목선이수제(UP · University-Level Program)'가 시행 2년째를 맞아 표류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우수 고교생의 선행학습을 권장하기 위해 야심차게 출범시켰지만 대학과 고교생 모두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반면 비슷한 제도인 미국의 AP(Advanced Placement)시험에는 국내 고교생이 대거 몰려 대조를 이루고 있다.

21일 대교협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 해인 2007년 겨울 UP 개설을 신청한 16개 대학 가운데 동아대 등 4개 학교가 고교생 지원자가 적어 모든 강의를 폐강했다. 이어 2008년 여름엔 17개교 중 12개교,겨울엔 18개교 중 8개교가 폐강했다.

이에 따라 2008년 여름에 개설된 강좌 63개 중 17강좌,겨울에 개설된 강좌 72개 중 28강좌만이 실제로 운영됐다. 고려대는 2008년부터 시행을 멈췄고,서울대 기초교육원 역시 일부 실험과목들을 폐강했다.

이처럼 고교생의 참여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UP가 대학 입시와 연계성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UP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서강대 관계자는 "대학입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입시 준비에 눈 코 뜰새 없는 고교 2~3학년생들이 UP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학입시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제도 보완책 없이는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학들 역시 UP를 기피하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UP는 표준교과과정에 맞춘 강의라 각 대학과 교수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점도 대학들이 강의를 적극 개설하려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대교협은 "제도 도입 당시부터 교과부가 UP를 대학 입시에 활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며 "아직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많은 부분들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은 지난달 전국입학처장협의회에서 "UP가 창의적 교육을 접하도록 하고 우수 인재를 조기에 육성하는 데 적합하므로 대입전형에서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반면 미국 대학위원회(College Board) 주관으로 시행되는 AP시험에는 많은 국내 고교생들이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UP처럼 하버드대 등 1400여개의 해외 대학들이 AP시험을 통해 딴 점수를 대학 학점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서울 역삼동의 한 AP학원 관계자는 "3000~4000명 정도의 학생이 매년 AP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AP시험을 주관하는 한미교육위원단 관계자는 "작년 첫 시행 때 70여명의 학생이 응시한 데 이어 올 5월 시험에는 300여명의 학생이 몰려 이미 마감한 상태"라고 밝혔다. 대원외고 등 일부 특목고는 학교에서 AP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AP시험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대학 입학시 가산점을 받거나 연세대 세계선도인재전형 등 국내 대학의 일부 수시 전형을 통과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들은 AP시험 성적을 대입전형시 비교과부분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