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경쟁' MB 교육정책에 기반한 예고된 수순
평준화 해체 논란 부를 듯


교육당국이 그동안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해오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자료를 15일 전격 공개하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도 간, 시군구 간 성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같은 평준화 지역 내에서도 학교 간 점수차가 뚜렷하다는 사실이 `이념'이나 `주장' 등이 아닌 `데이터'를 통해 그대로 증명이 됐기 때문이다.

경쟁은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이번 성적 공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크지만 학교 서열화, 입시경쟁 심화 등 부작용과 더불어 자칫 평준화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수능성적 공개 배경은 = 15일 교과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수능 성적 자료를 전격 공개한 직접적 원인은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요구 때문이었다.

조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참석한 안병만 장관에게 "(지역 간 성적 분석을 위해)수능 원자료를 공개해 달라"는 요구를 했고, 이에 장관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교과부는 수능 성적자료 공개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에 대해 내부 검토를 벌여왔고 16개 시도 및 232개 시군구 단위로까지 성적을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지난달 확정했다.

15일 교과부가 평가원을 통해 내놓은 성적 자료는 국회의원들이 성적자료 열람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체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무분별하게 자료가 가공, 해석되는 것을 막고 평가원이 전문적 시각에서 바람직한 연구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유지해 온 정책기조를 `180도' 뒤집는 획기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육당국은 그동안 지역 간 서열화로 인한 과열경쟁, 사교육 조장, 교육과정 정상운영 저해 등을 우려해 수능 성적 자료를 공개하는 것 자체를 `금기'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교수 신분으로 있을 때부터 교육당국에 수능성적 공개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는 결국 법적다툼으로 번져 조 의원은 2006년 수능 원자료를 공개하라며 당시 교육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 모두 `성적 공개' 판결을 얻어냈다.

이에 대해 교육부가 대법원에 상고해 현재 3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조 의원의 `요구'와 안 장관의 `답변'이 이번 성적 공개의 직접적 원인이 되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를 보면 수능성적 공개는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나 다름 없었다는 분석이다.

`평등'을 중시한 지난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핵심 키워드는 `자율'과 `경쟁'이다.

학교ㆍ지역 간 경쟁을 통해 건전한 발전을 이뤄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경쟁력과 질 향상을 위해 정보공개를 해야 한다는 것은 교과부 차원의 결정을 넘어 사회적 요구이며 `성적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논리다.

많은 반대와 교육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초.중.고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지난 2월 처음으로 공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는 사실상 수능 성적 공개를 위한 사전 포석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교육과정평가원 김성열 원장은 "현 정부는 성적 공개를 통해 얻는 이익이 비공개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학업성취도 평가 전수조사를 통해 학교, 지역 간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질적인 지원대책을 수립하겠다는 정책 방향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논란 만만치 않을 듯 = 교육당국은 이날 공개된 자료가 수능 성적 원자료 전체가 아닌 일부이고 공개 범위 또한 최소한으로 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교과부는 이미 지난달 성적공개 방침을 확정하면서 개별 학교명과 성명 등의 정보는 일절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개별 학교명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으며 학교별, 지역별 원점수는 물론 표준점수 평균도 나와있지 않다.

대신 지역별 최근 5년치 수능 1~9등급 학생 비율이 영역별로 나와있는데, 이 역시 1~9등급을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고 1~4등급, 5~6등급, 7~9등급으로 묶어 사실상 3개 등급이 되도록 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자료만으로도 16개 시도 및 232개 시군구별 성적 차 현황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어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가 우려해 왔던 학교.지역 간 서열화 논란도 불보듯 뻔할 것이란 지적이다.

교육당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성적 자료가 공개되는 순간 지역별 성적 순위가 일렬로 매겨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에서 지역, 학교의 성적은 해당 지역 교육감은 물론 광역시장, 기초단체장, 학교장의 평판도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는 지역, 학교 간 성적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 선택권이 없는 현 평준화 체제에서 학교, 지역 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평준화 체제를 과연 그대로 유지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