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지원에 사내복지기금 3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 잠자고 있는 기금을 활용해 잡셰어링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임금을 삭감한 근로자에 대해 생활안정자금 지원 차원에서 사내복지기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인 제약을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것이다.

◇ 놀고 있는 사내기금 7조4천억원
5일 기획재정부와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17만명이 소속된 1천125개의 사내근로복지금의 운영규모는 7조4천억원이다.

2008년 한해만 해도 1조3천700억원이 새로 출연됐다.

기금의 원금은 주택구입.전세자금.생활안정자금 등으로 근로자들에게 빌려줄 수 있고 당해연도 출연금의 50% 이내에서 학자금.생활안정자금.후생복리비 등으로 지출할 수 있다.

문제는 쌓여있는 기금 규모에 비해 지출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기금의 누적원금은 대부만 가능하며 신규출연금은 50% 이내에서만 지출이 가능하다.

이 기준에 따른 지난해 지출 가능액은 약 1조원이었다.

원래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이 지출 가능 분야를 엄격히 제한한 것은 기금 재원을 충실하게 운영해 안정적인 복지 혜택을 누리기 위한 차원이었지만 재원이 있는데도 지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사업주가 자금이 있어도 기금 출연을 꺼리는 부작용이 생기게 됐다.

◇ 4월부터 3조원 활용 가능
그러나 올 4월부터는 약 3조원에 달하는 사내복지기금을 잡셰어링 근로자의 생계비 지원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사내근로복지기금법 시행령을 고쳐 1년간 한시적으로 기금 누적원금(7조4천억원)의 25%(1조8천억원)까지 지출을 허용할 예정이다.

또 한해 출연금(1조3천700억원)의 지출한도도 기존 50%(6천900억원)에서 80%(1조1천억원)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근로자에게 앞으로 1년간 지출될 수 있는 사내복지기금의 최대 규모는 1조8천억원과 1조1천억원을 합친 2조9천억원이다.

이런 내용의 법안 개정은 정부와 노동조합 등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잡셰어링을 최고의 일자리 창출이나 지키기 정책으로 보는 정부 입장에서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이란 재원이 필요했고 어차피 임금이 삭감될 상황에서 노조 역시 사내기금을 활용해서라도 소득 보전을 원했기 때문이다.

◇ 기금 지출분야 논란 예고
다만 사내근로복지금을 통해 삭감된 임금을 보전하는 문제에 대해선 기술적으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반발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내복지기금법은 사내기금을 임금보전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복리후생 제도의 유지.보전 차원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행법에서 기금의 지출 가능 분야로 생활안정자금이 있는데, 이 부분을 과연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발표된 노사민정 합의문에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임금소득이 감소한 근로자에 대해 한시적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해 근로자의 생계비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즉 생활안정자금을 소득보전금의 개념으로 본 것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잡셰어링 기업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가운데 사내근로복지기금 활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특히 활용하지 못하고 쌓아둔 이 기금이 일자리 창출과 잡셰어링에 따른 근로자의 소득 보전에도 쓸 수 있어 좋은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박용주 기자 president21@yna.co.kr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