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古塔들, 뉴욕 마천루 빼닮은 듯"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피렌체(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 주도)에서 남서쪽으로 35분가량 자동차를 달리면 뉴욕의 마천루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 점점 다가온다.

평탄한 구릉 위로 정방형의 높다란 건물들이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형체를 분간할 정도로 다가서면 그제서야 감탄사가 나온다.

중세기에 지었음 직한 오래된 건물들 위로 지금은 사라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 같은 타워들이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다.

도시라고 하기엔 조금 작은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마을이다.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닌 이 마을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중세기 도시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탑(또는 타워)이라고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탑은 아니다.

높은 망루라고나 할까.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주차 전용 타워 같은 느낌도 준다.

모두 세 보면 15개 남짓.마을이 번창했을 당시에는 72개까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개중에는 높이가 50m나 되는 탑도 있다.

이 탑들 때문에 멀리서도 산 지미냐노를 한순간에 알아볼 수 있다.

현대 도시의 스카이 라인을 닮은 듯하다.

나도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 뉴욕의 마천루가 1000년 전에 이미 지어진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마을에 들어서서 탑들이 있는 건물 가운데(피아자 시스테르나 광장) 서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흡사 나를 지켜주는 것 같다.

건물은 4층 정도 높이인데 그 위로 솟은 타워는 10~12층 높이다.

꼭대기에 종루가 있는 타워도 있다.

11~13세기에 마을의 부유한 주민들이 셋방을 놓거나 공격에 대비한 망루나 요새로 쓰기 위해 탑을 높이 쌓았다.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로 높이 쌓느라 경쟁을 벌여 그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볼로냐나 피렌체 같은 도시에도 이런 형태의 탑들이 있었는데 전쟁의 포화,각종 재난과 도시 계획 때문에 지금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산 지미냐노의 타워들은 더욱 가치 있다.

이 탑은 영국 에섹스대학 캠퍼스를 디자인하는 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마을의 역사는 10세기부터 시작됐다.

야만인들의 침공에서 산 지미냐노를 지켜낸 성 지미니아누스라는 모데나 지방 주교의 이름을 딴 마을이다.

르네상스 시절에는 북쪽에서 로마와 바티칸으로 가는 순례자들이 쉬어가던 마을로 각종 교역의 요충지로 역할해 왔다.

산 지미냐노의 탑들이 그렇게 우뚝 솟아 보이는 것은 마을 자체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성벽 위에 올라서면 토스카나의 멋진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아기자기 펼쳐진 구릉,하늘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뭉게구름,아득히 보이는 산자락,그리고 지평선.그 위를 나는 이름 모를 새들이 여유로운 한때를 느끼게 한다.

새벽과 저녁이 되면 일출과 석양이 빚어내는 색채의 마술을 멀리 지평선을 통해 볼 수 있다.

유럽에서도 흔치 않은 풍경이다.

나는 이 곳을 찾을 때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마을 구석구석과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진다.

건물들은 지중해 특유의 핑크색 벽돌로 지어졌다.

오래돼 벽돌의 겉면이 떨어져 나가 회색빛이 감돌기도 한다.

벽돌 하나 하나를 감고 올라간 담쟁이 덩굴,성벽 틈새에 자생적으로 자라난 야생화와 풀들이 고대 유적지를 방불케 한다.

시간이 1000년 전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다.

산 지미냐노는 1년에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이탈리아에선 유명한 관광지이다.

따라서 관광객들이 빠져나가는 오후 늦은 시간대에 이 곳을 찾아 근처에서 숙박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아침 일찍이나 늦은 저녁에 둘러보는 게 훨씬 운치가 있다.

< 문의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02)796-0491 >

정리=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