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협상전략이 유출되더니 다목적 위성인 아리랑 3호 관련 국가기밀이 외국계 로비스트의 손에 통째 넘어갔다. 특히 문건유출이 공식적인 의사결정과 견해를 달리하는 내부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 국가기강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31일 다목적 실용 위성 아리랑 3호 사업과 관련해 국가기밀을 외국 기업 관계자에게 넘긴 혐의(공무상 기밀누설)로 현직 여당 의원 보좌관 이모씨와 이 정보를 건네받은 외국 기업 로비스트 이모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씨는 지난해 4월께 아리랑 3호 사업과 관련한 촬영장치 입찰 정보 등이 담긴 문건을 수차례에 걸쳐 외국 기업의 로비스트 신분인 한국계 미국인 이모씨를 통해 러시아계 업체에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아리랑 3호의 촬영장치 입찰에는 러시아,독일,이스라엘 업체가 참여했으며 입찰에서 탈락한 러시아 업체는 로비스트 이씨를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한 뒤 주한 러시아대사관 등을 통해 한국측에 입찰의 불공정성을 제기하려 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에 앞서 1월13일 국회에 대외비로 보고한 한ㆍ미 FTA 비공개 협상전략 보고서가 일부 언론에 유출돼 국익에 치명적 손실을 안겼다. 이로 인해 김종훈 수석대표는 미측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로부터 "협상전략을 잘 봤다"는 국가적 수모를 당했다. 또 여당의 한 의원은 지난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기밀 회의록을 잇따라 공개해 국익 훼손 논란을 빚었다. 국가 기밀과는 다르지만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 판결에 참여한 판사들의 명단을 사전에 일부 언론에 유출한 것도 부적절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문건 유출은 대부분 공식적인 의사결정을 막으려는 내부자들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회 문광위에 소속된 보좌관 이씨는 입찰이 불공정하다는 제보를 받고 친분이 있던 국회 과학기술정보위원회 인사를 통해 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해당 정보를 빼냈으며 이후에는 직접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 명의로 관련 기밀을 빼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FTA문건의 경우 FTA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세력이 전체 구도를 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NSC 문건도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과 견해를 달리하는 이모 행정관이 의도적으로 흘렸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과거사위의 유신판사 명단 공개도 명단을 발표할지 여부가 논란이 되자 일부 언론에 흘려 공개를 유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문건유출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미지근한 태도도 문제다. 책임공방만 무성할 뿐이다. 한ㆍ미 FTA 문건 유출과 관련,노무현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고 막을 수가 없다"고 발언,정부의 범인색출 의지를 의심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공무원이 국익과 관계되는 정보를 누설한다는 것은 이적행위나 마찬가지"라며 "이는 공무원들의 기강해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