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국내 반도체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수많은 경영 인재를 배출했다.국내 코스닥 반도체 장비·재료업체 임원중 상당수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의 엔지니어로 시작해 부장이나 임원급까지 지낸 후 독립,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며 사세를 키워나갔다.하지만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에는 이 두곳 출신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LG반도체 출신들 역시 코스닥 시장에서 또 다른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이들은 지난 1999년 LG반도체가 하이닉스에 인수·합병될 당시 회사를 나와 장비·재료업계에 뛰어든 경우에 속한다.


LG반도체 출신들은 모기업의 혜택을 알게 모르게 받은 삼성이나 하이닉스 출신과는 달리 맨손으로 시작해야 했다.그만큼 힘든 출발을 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LG필립스LCD 납품은 물론 수출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국내 IT(정보기술)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초기 출발이 어려웠던 탓에 서로간의 교류도 그만큼 더 끈끈하다.


코스닥 상장업체중 대표적인 LG반도체 출신 CEO로는 탑엔지니어링의 김원남 이관행 공동대표와 네패스의 이병구 회장,케이이엔지의 김동관 사장,라셈텍의 윤배원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휴대폰 부품업체 엠텍비젼의 이성민 사장도 LG반도체 출신이다.LG반도체 전신인 금성일렉트로닉스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디엠에스의 박용석 사장,에스티아이 노승민 사장,태화일렉트론의 신원호 사장도 여기에 포함된다.


케이이엔지 김동관 사장과 엠텍비젼의 이성민 대표는 퇴사후 전공을 살려 관련분야 선두권업체로 올라선 케이스다.김동관 사장은 16메가 D램과 64메가 D램 생산라인 구축 프로젝트 팀장과 메모리모듈 팀장을 지냈다.


1998년 퇴사하면서 케이이엔지를 설립해 FA(공장자동화) 사업에 나섰다.이성민 대표는 고체촬상소자(CCD) IC(집적회로) 개발부서 팀장을 지냈으며,이후 엠텍비젼을 설립해 국내 휴대폰 카메라용 이미지 컨트롤 프로세서 부문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라이벌업체인 코아로직의 황기수 대표가 LG반도체를 인수한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담당부서인 시스템LSI 연구소장 출신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디스펜서 부문 선두업체인 탑엔지니어링의 김원남 이관행 공동대표는 각각 LG반도체에서 선임연구원과 구매담당 상무를 역임했다.반도체 냉각장비업체인 라셈텍의 윤배원 사장은 LG반도체 이사로 영국 웨일즈 공장건설 프로젝트를 담당했었다.또 네패스 이병구 회장은 생산기술센터장을 지냈다.


에스티아이 노승민 사장과 디엠에스 박용석 사장,태화일렉트론의 신원호 사장은 금성일렉트로닉스 시절 안양의 파일럿 연구팀에서 같이 일했던 팀 동료였다.


이들은 초창기 모두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코스닥 업체 대표로서 협력과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LG반도체 출신끼리 모임은 따로 없지만,공급업체들이 대부분 겹치는 까닭에 교류는 활발한 편이다.삼성전자 협력업체 모임인 협성회,하이닉스 협력업체 모임인 현우회,그리고 LG필립스LCD 프렌즈클럽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모인다.


한 LG반도체 출신 CEO는 "아무래도 지금의 주 고객업체들과는 다른 업체 출신이다 보니 대내외적으로 LG반도체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우긴 힘들다"며 "하지만 우리끼리는 '한 솥밥'을 먹었던 사이인 만큼 기술적인 측면이나 해외시장 공략 등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