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2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안성휴게소 1층 건강검진실. 유치원 교사 정경희씨(35)가 체성분측정기에 올라선다. 잠시 후 모니터에 경고등이 켜지며 '체지방 비율이 높습니다.식사를 조절하십시오'라는 말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정씨는 "휴게소에서 검진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혈압 측정도 해야 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체성분측정기에는 이날 벌써 235명이 검사를 받은 것으로 표시됐다. 2002 월드컵을 앞두고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로 '1차 대전'을 치렀던 휴게소들이 이번에는 '특화 경쟁'으로 '2차 대전'에 돌입했다. 이번 대전은 철저하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휴게소 간 생존경쟁이다. 경부고속도로 상·하행선에 있는 휴게소는 32개로 서해안고속도로(17개)와 중부고속도로(15개)에 비해 휴게소가 많다. '전쟁'이 경부고속도로에서 먼저 불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휴게소가 포화 상태인 데다 KTX 개통으로 교통량이 줄고 불황까지 겹쳐 경부고속도로 일부 휴게소의 경우 매출이 뚝 떨어졌다.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20% 이상 감소한 곳도 있다. 이에 따라 휴게소들은 '특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한 인식 속에 차별화된 서비스와 상품으로 여행객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튀는 서비스로 승부 지난 2일 화물차전용 옥산휴게소(하행)는 휴게텔에 이발소를 만들었다. 화물차 운전자들이 잠시 눈도 붙이고 머리도 다듬고 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청원휴게소(상행)는 야구연습장과 인터넷이 가능한 코인식 PC방을 설치했다. 여행을 하더라도 꼬박꼬박 미니홈피나 블로그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 신세대들을 겨냥한 것. 안성휴게소(하행)는 지난달 18평 규모의 건강검진실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체성분측정기,혈압계,마사지기는 물론 운전 중 갑자기 높아진 혈압을 진정시켜주는 '혈압강하기'까지 갖추고 있다. 안성휴게소 배기연 영업과장은 "기흥 안성 망향 등 세 휴게소가 20㎞도 안 되는 간격으로 붙어 있어 '튀는 서비스'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며 "건강검진실 개설 후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휴게소도 명품시대 금강휴게소(상.하행)는 건물이 나무로 지어져 있다. 인테리어에만 150억원을 쏟아부었다. 얼핏 봐서는 리조트인지 휴게소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는 레스토랑도 문을 열었다. 가장 비싼 '디너특선'의 경우 가격이 5만원에 이른다. 이주홍 금강휴게소장은 "급한 용무만 잠깐 해결하려고 휴게소를 찾은 여행객도 오래 머물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휴게소는 싸구려. 휴게소는 셀프서비스'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죽암휴게소(상행)에도 종업원이 음식을 전부 갖다주는 고급 한정식집을 기존 매장과 별도의 건물에 만들었다. 안성휴게소(상행)도 종업원이 서비스하는 일식집과 카페를 갖추고 있다. 이 휴게소를 운영하는 ㈜영풍의 성태훈 영업팀장은 "고속도로 통행량이 줄어들어 휴게소 이용객이 감소하는 추세"라며 "식당 고급화로 객단가(이용객 한 명당 평균지출액)를 높이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