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는 아직 죽지도,실패하지도 않았습니다.벤처정신의 타락이 문제였을 뿐이죠.많은 과정과 실험을 겪으며 보다 성숙해진 벤처기업들이 다음 시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83년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를 창업,'벤처대부'라고 불리던 정문술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전 미래산업 사장·66)이 2001년 은퇴한뒤 3년만에 자서전격인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이란 책을 냈다. 정 의장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벤처 선배로서 벤처에 대한 세상의 부정적 시각을 바로잡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많은 젊은이들이 성공이란 필연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너무 경시하고 초고속 성공 강박관념에 시달려 왔다"며 "벤처 거품의 생성과 몰락 과정을 통해 '정도(正道)'의 중요성을 깊게 깨닫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의장은 또 "아직도 편지나 e메일 등을 통해 경영자문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 '내 얘기가 아직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서구의 새로운 선진 경영기법이 나오면 바로 도입하겠다고 호들갑을 떨곤 하죠.나는 과거 이런 데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아마도 한국적인 기업문화를 정착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가 터득한 경영기법은 대략 네 가지다. 친·인척을 경영진에서 배제하고 종업원과 동업적 관계를 구축하라는 것. 또 자율을 부여하는 게 최고의 인적자원관리이며,윤리경영을 하라는 것 등이다. 정 의장은 책을 내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 그는 "곱게 늙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돈 버는 걸 그만두고 명예욕을 좇는 걸 관둬야 되는데 책을 낸 것을 보면 후자는 아직도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 의장은 미래산업 은퇴 후 농민들을 가르치는 벤처농업대학의 학장(비상근)으로 재직해오다 최근 김동태 전 농림부 장관에게 이 자리를 넘겨주고 지난 3월부터 국민은행의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사외이사면서 이사회 의장인 자신이 은행의 감시자 역할을 할 따름이지 무슨 예우를 받느냐며 은행측에서 제시한 사무실 비서 전용자동차 등 각종 예우를 모두 거절한 채 자신의 승용차로 회의 때만 은행에 나가고 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