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 최고 엘리트 군인으로 꼽히는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장교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진급하려다 평범한 `보신탕집' 여주인에게 농락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군내 주요 인사들의 동향관찰과 비위적발 임무를 맡아 판단능력이 뛰어나다는평가를 받고있는 기무사의 고급 장교가 사기범행에 휘말린 것은 대령진급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상황이 결정적인 화근이었다. 올해 진급하지 못하면 청춘을 바친 군생활을 마감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A 중령이 평소 드나들던 보신탕집 여주인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모 대기업 회장의 수양딸이라는 말에 속은 뒤부터는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 권 씨가 대기업 회장의 수양딸로 행세하기 위해 동원한 수법은 약간의 주의만기울였다면 눈치챘을 정도로 간단했다. 그녀는 우선 'kingXXXX'라는 아이디가 포함된 대기업 회장 C씨 명의의 가짜 e-메일을 만들었다. 이후 이 e-메일에는 대통령 이름이 수시로 등장하고 때로는 대령 진급과 막대한재산 증여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은근히 A 중령을 협박하는 내용의 글들이 그럴 듯하게 올랐다. A 중령은 권 씨가 인터넷 PC방에서 C 회장 명의로 자신의 핸드폰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이를 보여주며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때마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않았다. 자신이 직접 주문한 순금열쇠에 무궁화와 태극 문양 등을 넣어 마치 청와대 하사품인 것처럼 속이기도 했다. 기무사 장교들이 자신의 보신탕집에서 주고받는 대화내용을 기억해두거나 군과권력층 동향에 대해 열심히 알아뒀다 적절한 시점에 써먹는 능숙함도 발휘했다. 지역에서 큰 사업을 하는 오빠와 먼 친척관계인 고위 공직자도 A 중령을 속이는데 동원한 인물들이었다. 물론 C 회장은 권 씨와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고, 오빠와 친척 공무원도 A 중령에 대한 사기극에 자신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 권 씨는 돈만 챙기는 데 그치지 않고 비선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한다고 속여 A중령으로부터 건네받은 군내 동향 보고 문건을 모 잡지사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 때쯤 A 중령이 기무사 내부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발각돼 징계를 받게되는 상황에 처해지자 청와대 여성비서관을 사칭해 송영근(宋泳勤.중장) 기무사령관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압력성 전화를 거는 대담함도 과시했다. 송 사령관은 권 씨의 전화를 받고도 선처 부탁을 수용하지 않아 급기야 군복을벗게될 지경에 놓인 A중령은 뒤늦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청와대에 진정을 내 마침내 사기극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은 "기무사 중령이 이렇게 어이없이 당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공포의 대상이 됐던 기무사의고급 장교가 중학교를 졸업한 뒤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음식점을 경영하던 30대 여성의 사기극에 맥없이 무너진 모습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