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만 치중하는 한국사를 흔히 비판할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해양성을 들곤 한다. 하지만 고대 한반도인의 해양성을 증명하는 직접 유물이라고 할 만한 선박은 이제까지 고려시대의 것 단 2점이 발굴됐을 뿐이다. 완도와 달리도 인근에서 발견돼지명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완도배(11세기)와 달리도배(14세기)가 그것이다. 삼국시대 선박 관련 유물로는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조각배 1척'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식 '선박'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놀이용 조각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고대선박 하면 흔히 '보물선'에 비견될 만큼 수많은 유물을 쏟아낸 신안앞바다 해저 발견 선박을 떠올리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중국 원나라 상선이어서 고려선박은 아니다. 이번 전북 군산 십이동파도 인근 해저에서 침몰된 채 발견된 고려시대 선박을주목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이 유물은 남아있는 실물이 희귀하기 그지없는 선박이라는 점에서 한국고대선박사 연구의 제1급 자료가 된다. 지금으로서는 목선(木船)이라는 것 외에 정확한 규모나 구조가 밝혀지지 않아 자세한 연구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선박 잔존 상태는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둘째, 이 선박은 다량의 청자를 적재한 채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고려시대 물자 유통 시스템 연구에서도 획기적인 증거자료가 된다. 이와 관련해 10일 공개된 침몰 선박의 고려청자 적재 장면 사진들은 경악과 찬탄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 사진들에 나타난 고려청자들은 대부분이 대접류. 이들 대접류는 서로 포개진채 여러 줄을 이루고 있다. 포개진 대접들 사이에는 충돌과 이에 따른 깨짐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인 듯 지푸라기나 갈대와 같은 것이 채워져있다. 또 이렇게 포개진 대접류 각각의 줄 사이로는 나무를 설치했다. 이 또한 해상운송에서 비롯되는 충돌과 깨짐 방지를 위한 목적에서 고안된 수송 장치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번 침몰선박 발견은 고려청자를 어떻게 운반했는지 그 방법을 실물로서 완전하게 드러낸 첫 증거물이 된다. 이 선박이 적재한 청자가 어디에서 제작되어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는 현재로서는 판단이 어렵다. 다만 선박이 침몰된 곳에서 가까운 부안 일대에 유명한 고려시대 청자가마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고, 또 청자의 주된 수요층이 개경 일대 왕실과 관료층 등으로한정될 것이라는 점에서 청자로 대표되는 물자가 고려시대에 어떻게 운송 유통되었는지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캐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고려청자 제작에 대한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