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행원에서 시작해 40년을 조흥은행에서 일했습니다.저처럼 행복한,행운이 따른 은행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6일 퇴임식을 갖고 물러난 위성복 전 조흥은행 회장(64). 그는 1964년초 조흥은행에 들어간 뒤 40년간 조흥은행에서만 일했다. 그 동안 대리 지점장 이사 전무는 물론 두 차례의 은행장과 회장 고문까지 은행의 직책이란 직책은 거의 다 맡아 봤다. 은행 생활을 정리하는 소감에 대해 그는 "서운한 감정은 전혀 없다"며 "모두 다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도 조흥은행의 독자생존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그다. 조흥은행에 대한 애정이 많은 만큼이나 신한금융지주회사에 팔린 애틋함도 남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위 전 회장은 "정부 지분을 기관·외국인·개인에게 골고루 분산시켜 토종은행으로 길렀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다"며 "다소 섭섭은 하지만 대주주가 결정한 사항인 만큼 순응해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그렇지만 그는 "신한지주에 딱 한마디만은 해야겠다"며 "큰 마음을 갖고 경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흥은 1백6년 된 은행입니다.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나름의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큰 마음으로 이를 수용해야지 그렇지 않고 20여년 된 신한을 따라 오라며 일방적으로 고치려고 하면 곤란합니다." 위 전 회장은 "조흥 직원들도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2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손실없이 처음으로 상환한 은행인 만큼 자부심을 갖고 세계 일류 은행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1백6년된 조흥의 얼을 살리는 길"이라는 설명이었다. "은행원 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외환위기 직후 은행이 존망의 기로에 내몰렸던 때"라는 그는 반대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구조조정이 가시적 성과를 내서 1천원대로 떨어졌던 주가가 8천원 언저리까지 올랐을 때"라고 꼽았다. 그는 "세계 금융의 추세는 겸업화·대형화"라며 "이런 흐름에 가장 먼저 적응한 곳이 신한지주"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하나은행과 국민은행도 지주회사 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항상 知를 德보다 앞세우지 않겠습니다.' 그의 홈페이지(www.sbwee.pe.co.kr)에 나와 있는 표제다. 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 좌우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는 "앞으로도 이 명제를 기억하며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위 전 회장은 당분간 한국 CFO(재무담당 최고임원)협회장 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ABA(아시아은행협회)부회장 일도 당분간 지속할 계획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