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가 13일 대법원의 신임 대법관 선임내용이 사법개혁을 바라온 온 국민적 기대를 저버렸다며 법관직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 제청위 회의에서는 강금실 법무장관과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일방통보식' 후보 추천 방식 등에 반발, 위원직을 사퇴하고 퇴장한 바 있어 대법관 인선 갈등이 법조계 전반으로 번져 자칫 `법난'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 강 장관과 박 회장의 위원직 사퇴에 이은 현직 부장판사의사표로 파문이 확대되자 긴급 간부회의 등을 갖고 향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사직의 변을 통해 "최근 모습을 드러낸 새 대법관 선임의 내용은 기존 기준과 방식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내용으로 이뤄져있다"며 "법관으로서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을 짐지는 방법으로 법관직을 내놓고자한다"고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우리 사회가 개혁과 도약을 이루는 전환의 계기를 맞았을 때조차 사법부는 외부 흐름에 밀려 속내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사법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의요구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큰 물결로 사법부를 옥죄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 안팎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새 대법관은 완전히 새로운 기준과방식으로 선임돼야 함을 외쳤고 이번 대법관 선임이 사법부 변신의 큰 계기가 되기를 기대와 설렘 속에 지켜봐 왔다"며 "그 기대가 철저히 외면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저는 허탈감과 참담함에 몸이 떨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대법관 선임내용은 사법부 변신을 간절히 기다리는 국민과 법관들의기대를 저버리는 일이자 시대의 엄숙한 요구에 대한 중대한 외면"이라며 "18년간 사법부에 몸담은 저 역시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동안 비겁한 타협과 안일한외면, 무책임한 침묵에 대해 자괴심과 죄송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또 "저는 그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을 짐지는 한 방법으로 지금껏 붙잡고 있던 법관직을 내놓으려 한다"며 "이 보잘 것 없는 제물이 새롭고 자랑스런 사법부 탄생의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모든 법관들에게서 각자몫에 상응하는 반성과 고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박 부장판사는 사시 21회로 18년간 판사로 근무해 오면서 지난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등 법원내 진보적 성향의 판사로 알려졌으며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위원회가 선정한 대법관 후보로 추천받았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