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 금융조사부(이인규 부장검사)는 18일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토록 SK그룹측에 압력을 넣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수수)로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구속 수감했다. 검찰 관계자는 "형식적으로는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지만 사실상 공정위원장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이용한 갈취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씨가 SK측으로부터 해외 출장경비 등 명목으로 미화 2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는 관련자들이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추후 보강조사를 통해 결론내기로 했다. ◆ 공정위에 발목잡힌 SK =SK측이 이씨가 다니던 서울 시내 모 사찰에 10억원을 시주하게 된 데는 지난해 5월 SK텔레콤의 KT 주식 과도매입이 단초가 됐다. 정부는 당시 KT 민영화 방침에 따라 정부지분 28%를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공정위는 "특정 업체가 KT 주식을 다량 매입하면 독점이 우려된다"며 입찰 참가 업체들에 5%까지만 매입토록 권고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KT를 지배하기 위해 1조5천억원을 들여 주식 9.55%와 교환사채(EB,1.79%) 등 11.34%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씨는 공정위 권고가 무시되자 "SK텔레콤이 KT 및 KTF를 장악해 통신시장 독점 우려가 있다"며 공정위 독점국에 시장경쟁 제한여부 등을 조사시켰다. 검찰은 "공정위가 SK텔레콤에 KT주식 매각명령을 내리면 대규모 매각에 따른 손실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했을 것"이라며 "이것이 SK측에서 조사무마 로비를 벌인 이유"라고 말했다. ◆ 공정위원장 권한 남용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7월말 전격적으로 SK텔레콤에 대한 조사중단 결정을 내렸다. SK텔레콤이 당시 취득한 KT 지분중 교환사채분을 매각하자 "SK텔레콤의 KT지분이 10%에 미달해 조사대상이 아니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씨가 SK측에 시주를 부탁한 것은 이런 결정이 있기 보름쯤 전이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씨가 지난해 7월 중순 김창근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집무실로 불러 KT지분 처리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 본부장이 조사중단을 요청하자 이를 빌미로 시주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다. 다급한 처지였던 SK측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9월께 10억원을 내놨다. 검찰은 "이씨가 과거에도 시주를 요청했으나 최태원 그룹회장이 '특정 종교, 특정 사찰에 시주하면 다른 종교단체와 마찰이 우려된다'며 거절했었다"며 "그러나 작년 7월에는 거절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비록 개인용도로 쓰지는 않았지만 독과점을 감시하는 공정위 수장이 청탁을 받고 금품을 요구한 것은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SK측이 기부한 10억원의 일부는 사찰 공사대금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사찰 계좌에 보관돼 있는 점으로 미뤄 이씨가 돈을 착복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