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참사가 발생한지 열흘만인 지난달 28일 정부가 신속한 사태수습을 위해 중앙특별지원단을 파견키로 한 가운데 이같은 '성과물'을 만들어낸 실종자가족들이 구성한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와 중심인물에눈길이 쏠리고 있다. 실종자가족대책위는 지난달 25일 처음으로 중앙정부가 투명하고 신속한 사고수습과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했으며, 같은달 27일 조문온 고 건(高 建) 국무총리에게 '현재 대구시장이 주관하는 사고대책본부를 신뢰할 수 없다'며 중앙지원단파견을 요청해 이를 약속받았다. 대책위는 지하철 차량기지창에 보관된 중앙로역 잔존물에서 신체부위 4점 등 유류품이 발견되자 지난달 26일 사고대책본부장인 조해녕 대구시장의 퇴진과 대책본부의 무성의하고 성급한 일처리를 비난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지난 25일 밤새 사고현장 부근의 지하상가에서 불이 났다는오인신고가 있어 지하철 구내에 머물러 있던 실종자가족의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사고대책본부를 찾아갔으나 대책위를 책임져야할 사람이 만취상태에서 유족들에게 폭언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비통한 현장에서 이같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실종자가족대책위는 사건발생 하루만인 지난달 19일 대구시민회관 소강당에 마련된 사망자.실종자 유가족대기실에 가족들이 모여들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위원장과 총무 중심으로 특정한 업무분담이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위원장.부위원장 1명씩에 사무국과 업무조사부, 홍보부, 대외협력부, 전산팀 등을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법적 효력이 있는 대책위로 정식발족했으며 대표위원 24명을선임해 실종자대책을 다루고 있다. 사무국은 5명의 상근자를 두고 전체업무를 총괄하며 업무조사부는 상근자 3명에국과수의 실종자가족 면담.혈액채취.치과면담 등을 돕고 유가족 신상파악 등을 담당하고 있다. 대외협력부는 학생.시민단체 등과 사태수습 공동대응책을 마련하고 홍보부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daegusubway.or.kr)를 운영하면서 학계.연예계.노동계 등에 대책위의 입장을 알리고 협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전산팀은 컴퓨터를 이용해 당국에 제출할 실종자 관련각종 통계 등을 처리하고 있다. 한편 사태수습 과정에서 공무원들로 짜여진 사고대책본부를 상대로 정연한 논리로 실종자가족들의 이해가 걸린 예민한 문제들을 대변하고 있는 윤석기(39.회사원.서울 거주) 대책위 위원장도 자연스레 부각됐다. 윤씨는 실종자 직계가족이 아니지만 처형 장영숙(37.대구시 동구 효목동)씨가지하철참사로 실종되면서 가족들 모임에 참여했고 사건초기 실종자가족들이 당황해하자 모임에서 사회를 맡았다. 당초 유가족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사망자유족으로 분류돼 물러나면서 실종자가족들이 윤씨에게 위원장을 맡을 것을 강력히 요구해 떠맡다시피 추대됐다. 그는 대구시가 설치한 사고대책본부측과 시신확인, 부상자 입원치료, 실종자 파악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언변과 몸사리지 않는 태도로 실종자가족의 입장을 대변해 호평을 받았다. ROTC출신인 윤씨는 사고수습 과정에서 공무원들로 구성된 사고대책본부에 대해일반인 신분이 무색할만치 체계적인 논리와 구체적인 입장정리를 통해 실종자 가족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최근에는 국무총리, 검찰총장, 관계장관 등을 면담하는 자리에 며칠째 면도를하지 않은 야성적인 외모와 외투차림으로 등장해 '바바리코트의 사나이'라는 별칭을얻었다. 윤씨는 "멀쩡한 가족을 졸지에 잃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앞에 나섰을 뿐 나 자신은 그저 보통 사람"이라며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실종자가족대책위의 활동을 우려섞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이 단체가 사고대책본부와 대화를 거부하는 등 일련의 강경 움직임을 펴는 배경에는 보상을 노리는 사건브로커의 농간이 있을 수도 있다"며 대책위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이에 대해 실종자가족들은 "지하철공사 등이 사건진상을 감추려한 의혹 등이 수사결과 사실로 밝혀져 당국을 믿을 수 없는 것일 뿐 불순한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대구=연합뉴스) realism@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