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북한선수단을 맞이한 김해공항은 초가을의따가운 햇살 속에 이른 아침부터 화합의 기운으로 넘쳐흘렀다. 한반도기를 들고 공항에 나온 북한 서포터즈와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 관계자들은 고향의 부모형제를 마중나온 사람들처럼 하나같이 들뜬 표정을 한 채 북녘 동포들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선수단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낮 11시36분 북한선수단 1진을 태운 고려항공 전세기가 평양 순안공항을 이륙한지 1시간36분 만에 무사하게 김해공항에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입국장은 가벼운흥분에 휩싸였다. 곧 비행기 출입문이 열렸고 조선올림픽위원회 조상남 서기장과 방문일 선수단장등 북한 임원진이 트랩을 내려와 가깝고도 멀기만 했던 남녘 땅을 밟았다. 한 민족을 떼어놓았던 이념의 빗장이 스포츠란 인류의 보편적 진리 아래 소리없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임원진의 뒤를 따라 리정만 축구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인간장대' 리명훈(235㎝)의 모습이 보이자 입국장은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면서 기다림의 초조함에서벗어나 흥겨운 잔칫집으로 변했다. 리정만 감독은 북새통을 이룬 국내외 취재진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99년통일농구대회 때 방한했던 리명훈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특유의 너털 웃음을지어보였다. 하지만 헤어짐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측의 국제대회에 참가한 북한선수단은 전반적으로 긴장되고 어색한 표정이 역력했다. 유도 영웅 계순희를 비롯한 선수들 대부분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듯 거듭 소감을묻는 질문을 받고도 잔잔한 미소로 비켜갔고 경찰의 엄호 속에 총총걸음으로 대기중이던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달 통일축구 때 북한팀을 지휘했던 리정만 감독만이 버스 안에까지 밀고 들어온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을 뿐 나머지 선수들과 코치들은 함구로 일관했고 일부는짜증 섞인 목소리까지 냈다. 특히 방문일 선수단장은 리명훈을 위한 별도의 특수차량을 요청했는데도 조직위가 이를 지키기 않았다며 자존심이 무척 상한 듯 시종 안색을 붉혔다. 빗장이 열리고 스포츠를 통한 화합의 장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반세기동안 쌓인마음의 벽은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내 나라에 왔는데 왜 안 기쁘겠소?"라는 리정만 감독의 되물음에서 남북은 영원한 하나됨의 가능성을 찾았고, 이제 그 출발선에 섰다. (부산=연합뉴스)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