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3년부터 시작된 유신정권의 교도소내 사상전향 공작과정에서 좌익사범과 비전향 장기수들이 상습폭력으로 사망했고, 당시 중앙정보부와 법무부가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교도소내에 구성된 '전향공작 전담반'에는 교도소내 폭력사범을 비롯한 일반 재소자들이 참여했고, 전향공작은 좌익사범이나 비전향장기수외 경미한 반공법위반자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29일 지난 74년 대전교도소 수감중 사망한 좌익사범 최석기, 비전향장기수 박융서 의문사사건과 대구교도소에서 76년 사망한 비전향장기수 손윤규 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이들이 전향공작중의 폭행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74년 4월4일 대전교도소 독거방에서 심장마비사한 것으로 당시 수사결과가 발표됐으나 의문사위 조사결과 교도소에서 4월4일 오후 8시께 격리사동으로 옮겨진 후 '좌익수전향공작전담반'에서 활동한 폭력사범 조모씨에 의해 입에 수건을 물리고 바닥에 눕혀 몸 전체를 구타당하는 등 항거불능상태에서 극심한 폭행을 당한후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 사망후 교도소장과 중앙정보부 좌익수형자 전향공작 담당자들이 사건 처리대책을 의논한 후 4월6일 최씨의 사인을 심장마비로 처리해 법무부 장관에 이를 보고하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했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최씨를 폭행했던 조씨는 이후에도 전향공작에 가담했으며 '공적'을 인정받아 만기보다 4년 일찍 출소했다. 또 74년 7월20일 사망한 비전향장기수 박씨도 일반수형자들 중에서 선발된 전향공작원들에 의해 사망당일 역시 격리사동으로 옮겨진 후 온 몸을 바늘로 찔리는 등고문을 당한후 교도소 창살의 유리파편으로 동맥을 끊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고문을 당한 후 옆방에 수감된 좌익수형자 양모씨에게 "바늘로 온몸이찔렸다. 정말 이렇게 살아있으면 무엇하나. 교도소의 만행이 너무 심하다"라고 말한후 벽에 '전향공작 강요말라'라는 혈서를 쓰고 자살했다고 의문사위는 밝혔다. 사건이 발생하자 대전교도소측과 중앙정보부는 전향공작원의 폭행으로 박씨가자살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 사실을 숨기고 단순 자살로 처리했다. 역시 비전향장기수인 손씨는 대구교도소에서 수감중이던 76년 3월24일부터 자신이 쓴 자술서가 전향서로 위조된 사실에 항의해 단식농성을 벌였고 교도소측에서는3월 27일과 30일, 4월 1일 세 차례에 걸쳐 손씨의 입을 통해 위에 호스를 찔러넣어 소금물을 투입하는 형태로 강제급식을 실시했다. 손씨는 강제급식후 건강상태가 급속히 악화됐고 결국 후유증으로 4월1일 오후7시20분 숨졌으나 교도소측은 유족에게 전신쇠약과 빈혈로 사망했다고 통보했다. 의문사위는 "전향공작 과정에서 자행된 폭행에 의한 죽음인만큼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 부분은 인정되나 전향공작 거부여부가 민주화운동과 관련되는지의 여부에대해서는 계속 검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