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그룹이 지난 96년 전주 민영방송사업자 선정과 관련, 당시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거액의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참고인이나 관련자들의 잇단 자살.사망과 도주 등으로 결국 진실규명이 어렵게 됐다. 검찰은 올들어 세풍그룹에 대한 공적자금비리 수사과정에서 6년만에 민방로비의혹의 정황을 잡고 일부 관계자들의 구체적 진술까지 확보했지만 금품수수를 뒷받침할 물증확보에 실패, 로비의 실체가 미궁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당시 고대원 전 ㈜세풍 부사장이 민방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각종 경비 및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돈은 모두 39억원. 고씨는 운영비 및 홍보비 등으로 사용한 19억원을 제외한 20억원을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는데, 이중 5억원이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지낸 L씨에게 건네기 위해 마련됐다. 당시 지역민방 선정 과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을 갖고 있던 L씨와 직접적인 연줄을 갖지 못했던 고씨는 로비스트 김모씨에게 5억원을 줬고, 김씨는 이를 다시 모 지방대 교수 박모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검찰에서 "5억원 중 L씨에게 전달할 2억2천만원을 L씨의 개인 보좌관을 지냈던 정모 교수에게 줬고 나머지 2억8천만원은 내가 챙겼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돈의 최종 전달자로 의심받던 정씨는 참고인으로 검찰에 출석해 박교수로부터 돈을 받지도 않았고 L씨에게 전달한 사실도 없다며 완강히 부인했으며, 지난 6월초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음에 따라 L씨에 대한 로비의혹 수사는 더 이상 진척이어렵게 됐다. 고씨는 15억원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측을 상대로도 로비를 벌이려했는데, 고씨는 L씨 로비에 나섰던 김씨에게 15억원을 전부 건넸다고 주장했으나,돈 전달자인 전직 모방송사 기자인 장모씨가 사망하면서 역시 돈의 흐름 추적이 끊기고 말았다. 더욱이 민방사업을 사실상 혼자 추진하다시피 했던 창업주 고판남씨가 98년 4월사망했고, 세풍그룹의 자금을 주물렀던 김모 전 자금담당 전무가 미국으로 도주함에 따라 로비자금의 조성과정에 대한 수사도 난관에 빠지게 됐다. 대부분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처벌이 어려운 점과 로비자금이 거의 전액 현금으로 움직였다는 점도 진실규명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특히 공소시효는 광주와 대구민방 사업자 선정비리에서 적용됐던 알선수재는 물론 변호사법위반, 정치자금법 위반도 5년의 시효를 모두 경과,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이 시효를 피하기 위해 입을 맞추는 등 수사를 방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fai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