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중심에 서서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함께해온 김동완 목사가 8년간 맡아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직에서 물러났다. 김 목사는 18일 오후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20여명의 KNCC 실행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이임식을 갖고 평범한 목회자로 돌아갔다. 후임 백도웅(KNCC 부총무) 목사는 오는 22일 정식 취임한다 김 목사는 이임사에서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함께 일해야 한다는 명제가 절실하다"면서 "교회연합을 위해 기도해달라"며 교회의 일치.연합을 최우선 과제로 당부했다. 그는 이어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분신사건을 신문에서 접하고 그의 죽음과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다니다 KNCC에 발을 디딘 이래 32년간의 삶을 여기서살았다"며 "그러나 좀더 잘할 수 있었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럽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 목사는 향후 계획과 관련 "한국대학생총연합회가 '이적단체'가 아님을 밝히는 일을 할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았다"며 "앞으로도 민주화쪽 운동을 하겠다"고밝혔다. 김 목사는 1970년대 빈민사목,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서서 개신교의 대표적 진보인사로 활동해왔다. 감리교회 소속인 그는 장공 김재준 목사 등의 뒤를 잇는개신교 진보파 2세대의 기수격이었다. 90년대 들어서는 북한교회 초청으로 5차례에 걸쳐 방북하는 등 천주교 김종수신부와 함께 종교계 통일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가 몸담았던 KNCC는 예장통합과 기독교감리, 기독교장로 등 8개 교단이 가맹한 개신교 진보단체로 명동성당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6.29 운동의 불씨를 당긴 박종철 고문사건의 폭로가 KNCC를 통해 이뤄졌으며 김근태.권인숙 고문사건 등 현대사를 격동으로 몰아넣었던 각종 제보들이 KNCC로 집중됐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철도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던 KNCC 건물에 병력을 투입해 노동자들을 강제연행, KNCC가 갖고 있던 '성역'의 위상이 크게 추락하기도 했다.김대중 정권의 출범 후로는 정부 비판의 자세를 거의 접고, 통일운동 등에서 사실상정부와 호흡을 함께해왔다. 그 과정에서 노정된 김 총무의 행보를 두고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김 목사는 총무 퇴임 후 기독교방송(CBS) 사장 또는 기독교서회 사장으로 가려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결국 평범한 목회자로 남게 됐다. 윤기열 KNCC 회장은 이임식 인사말에서 "8년간 대내외활동 등을 통해 KNCC의 위상을 높인 김 목사에게 다른 임지를 열어주지 못한 채 보내게 돼 무거운 마음"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