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패션(LDS)의 이동수 회장이 17일 오전 5시40분 폐암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60세. 이 회장은 1942년 5월30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으며 진해고와 서라벌예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65년 '트르샤패션'에 이어 72년 '우연부틱크'를 설립해 의류사업에 몸담아온 이 회장은 국내 패션디자이너 1세대로 꼽히며 37년간 한 우물만을 파왔다. 이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상품에 대한 철저함과 고객 감동을 모토로 패션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해 왔으며 시대변화의 흐름을 앞서가는 패션감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아왔다. 84년 '이동수패션'을 설립,중년 여성복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항상 "틀에 박힌 지식과 자기관념적 이론에만 치우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변화와 도전을 강조해 왔다. 이를 반영하듯 88년부터는 골프웨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해외 유명브랜드 일색인 골프웨어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를 심기 위해 정열을 불태웠다. 이 회장은 평소 "세계 골퍼들의 가슴속에 내 이름 이동수 석자를 각인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골퍼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이를 위해 지난 2000년 3월에는 국내 최초의 골프구단인 이동수골프구단을 창설했다. 매년 10억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홍보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유명한 선수보다는 유망한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힘썼다. 평소 골프선수들에게는 무작정 볼만 잘 치는 선수가 되기보다 인성이 올바른 선수가 되도록 독려했다. 또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곳을 수시로 방문해 함께 식사를 하며 정신적인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 허석호 양용은 등 국내 프로들의 기량이 급성장한 데는 마음껏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이 회장의 숨은 공로가 있기에 가능했다. 술을 좋아해 두주불사로 유명했으나 골프를 시작한 지 25년동안 단 한차례도 골프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이 회장은 정기검진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허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폐암말기 판정을 받고 4개월째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자씨와 4녀가 있다. 발인은 19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02)3410-6918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