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림제지는 협력적인 노사관계로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대표적인 회사로 꼽힌다. 노후 설비임에도 불구하고 최신 설비를 갖춘 대기업 계열사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뤄 품질과 생산성에서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지난 96년 이후 외환위기체제 아래에서도 5년 연속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 회사 특유의 원만한 노사관계가 한몫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사분규로 한때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던 세림제지가 이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된 데는 13년간 노조위원장을 맡아온 최창주씨(50)의 노력이 가장 큰 힘이 됐다는 게 한결같은 평가다. 그는 89년 회사측이 설립한 유령노조에 지지자들과 집단으로 가입해 ''쿠데타''를 성공시키면서 노조위원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무능한 회사간부의 퇴진운동을 전개하고 임단협 때만 되면 노사갈등을 마다하지 않는 ''강성'' 위원장이었다. 92년에 단행된 전면파업은 이같은 그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 그러나 파업 이후 회사 경영은 크게 어려워졌고 갈등과 대립이 노사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회사측도 같은 인식을 하면서 92년에 노사한마음 극기대회를 개최했다. 회사측은 노무관계 부서를 정비하고 노조를 대화파트너로 간주해 사소한 것까지 상호협의했으며 성과급제 종업원지주제 등을 도입했다. 세림제지는 지난해 회사 설립 이후 최대규모인 45억원의 적자를 냈다. 주문은 계속 몰려들고 재고는 쌓일 겨를이 없지만 최신설비를 갖춘 대기업들이 시장확대를 위해 대대적인 덤핑공세를 펼친 것이 주 원인이었다. 노조는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하에 회사와 공동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20여명의 직원을 명퇴시키고 40명은 하청회사 형태의 자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최 위원장은 연월차 소진 잔업수당·복리후생비 등의 반납조치도 취했다. 금액은 얼마되지 않지만 회사가 어려울때 동참한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노조 상근자도 4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그 결과 올해는 큰 폭의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