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호! 터졌다,터졌어!" 19일 새벽 4시.강원랜드."차르륵"하는 단조로운 기계음의 "정적"을 깨고 O번 기계 앞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경북 포항시에서 온 김영환씨(62.가명)가 "한번 걸렸지"라며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기계판에 새겨진 글자는 "777".이 기계의 상한액인 1천5백원을 베팅해 15만원을 버는 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기계 터질 때가 됐어" "좀 더 하지 그래"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친구들과 단풍놀이를 겸해 카지노에 들렀다는 김씨는 "이거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원을 잃었는데 간신히 한번 떴다"며 "친구들이 모두 손해를 많이 봐 새벽 산행은 아마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새벽 열기 속으로=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장인 강원랜드.시계는 이미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카지노장의 후끈한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지폐다발을 게임기에 얹어 놓고 시간만 낚는 점퍼,여러대의 슬롯머신을 차지한 채 열심히 버튼을 누르는 주부,카드 한장마다 환호성과 탄식을 번갈아 쏟아내는 넥타이 등등….5백여평의 카지노장은 한마디로 북새통이다. 제법 큰돈이 오간다는 바카라 블랙잭 등의 테이블에는 두겹 세겹의 인파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건물 밖은 해발 1천m 고지대답게 냉기가 싸늘한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서서 혹은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새벽 6시.폐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몇몇은 아예 카지노앞 소파와 바닥에 자리를 잡는다. 카지노가 재개장하는 오전 9시까지 그렇게 기다릴 모양이다. ◇빛과 그림자=국내 최초의 내국인 출입카지노로 폭발적 관심을 모았던 강원랜드가 오는 28일로 개장 1주년을 맞는다. 외형적으로만 놓고 볼 때 지난 1년간 강원랜드가 거둔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올 상반기에만 2천2백46억원의 매출과 1천1백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영락없는 '황금알'이다. 지난 17일엔 코스닥 등록예심을 통과하는 경사도 겹쳤다. 그러나 부익부 빈익빈,도박중독자 양산,열악한 카지노 환경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지난해 2억원을 들여 고한읍내에 갈비집을 연 김모씨는 최근 가게를 8억원에 넘기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동안의 수입을 제하고도 1년새 6억원 가량의 돈을 거머쥘 수 있게 된 셈이다. 주변의 숙박업소나 주유소 등도 매출이 50% 이상 올라갈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있는 사람만 돈을 벌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애당초 카지노 유치를 주장했던 지역 유지들은 땅값 폭등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영세상인이나 탄광 퇴직자 등의 삶은 더욱 황폐해졌다는 지적이다. 재래시장 골목에서 식료품가게를 하는 임모씨는 "광원들은 자기 소유의 땅이나 집을 갖고 있지 못해 보상금 규모가 작았다"며 "이들이 폭등한 집값을 못이겨 타지로 떠나면서 이들을 주고객으로 했던 영세 가게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고 푸념했다. 도박중독자가 늘어난 것도 문제다. 개장 이후 가족들의 요청으로 카지노출입이 제한된 사람이 지난 9월말 현재 1백25명에 달할 정도다. 강원랜드가 지난달말 고한읍 사무소앞에 개설한 '한국도박중독증센터'에도 하루 평균 3∼4건 정도의 상담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거품 사라지는 업종도=그동안 고한읍내에는 예전에 없던 새로운 가게들이 속속 등장했다. 휴게텔 뷰티숍 점집 전당포 피자집 나이트클럽 등 카지노 특수를 노린 가게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수지를 맞추지 못해 떠나는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카지노 개장 이후 급증했던 전당포가 대표적인 케이스.한때 67개까지 늘어났던 전당포수는 현재 20여개로 줄어들었다. 30여개의 침대를 갖추고 출발했던 휴게텔도 현재 업종변경을 추진중이며 2억원을 들여 오픈한 횟집은 최근 문을 닫았다. 강원랜드의 박도준 홍보부장은 "카지노 영업이 안정화단계에 들어서면서 막연한 영업전망을 보고 들어선 전당포들이 자진해 폐업하고 있다"며 "다른 업종도 시장논리에 따라 거품이 서서히 빠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선=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