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진 대마불사 ]]

직장인들 사이에 ''대기업신앙''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잇단 좌초는 기존의 사고
체계를 밑뿌리부터 바꿔 놓았다.

대기업이라 해서 평생이 보장되던 ''꿈의 일터''는 더이상 아니다.

명퇴(명예퇴직) 황퇴(황당한 퇴직) 조퇴(조기퇴직) 등 신종속어의 양산속에
이들은 언제 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판사 검사 등을 제치고 한때 신랑감후보 1순위로 꼽혔던 대기업직원의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대기업 L사에 근무하는 이규식대리(32).

매일 새벽 6시면 졸린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선다.

영어학원에 가서 회화실력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이씨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칼이란 바로 실력이다.

그는 실력을 쌓아 미래에 대비하면 불안감을 덜 수 있다고 믿는다.

그만두라고 하면 미련없이 회사를 떠날 채비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IMF이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이씨는 회사에서 촉망받는 젊은 사원중의 하나였다.

소위 노른자위 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그러나 구조조정 태풍이 불어닥친 이후 생각을 바꿨다.

조그만 구실만 생기면 가차없이 문책하는 회사에 정이 떨어진 것.

직속부장이자 대학선배이기도 한 K씨가 "팽"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K부장은 작년 10월 이전까지만 해도 잘 나갔다.

동기생중에서는 가장 먼저 이사 승진이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그가 투자한 태국프로젝트가 실패하자 대기발령을 받았다.

그는 곧 사표를 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내 굴지의 증권사인 D증권 차장이었던 김모(39)씨.

그는 성장업종인데다 화이트컬러 직종이라는 매력에 끌려 증권맨의 길을
택했다.

합격했던 종합상사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린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금융기관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믿은 것이다.

증권업계에서 1, 2위를 다투던 이 회사가 간판을 내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좌절속에 1개월 가량 홧술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늦게 들어가 잠자는 어린 애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내가 폐인이 되면 저 애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마음이 스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날밤 그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새길을 찾기로 했다.

망한 회사를 자신이 선택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퇴직금은 한푼도 못받고 나왔다.

대출받아서 사둔 우리사주가 휴지조각처럼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방으로 뛴 결과 중소화장품 업체 경리책임자직을 얻게 됐다.

그것도 인수공모부 시절 그 회사 경영진과 가까이 지낸 결과였다.

그는 실업자로 방황하는 전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은 나은 편이라고 위안을
느끼고 있다.

직장관도 바꿨다.

이제는 되도록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업무에 최선을 다하되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일요일이면 가족과 산에도 오른다.

열손가락안에 꼽히는 대그룹계열의 H사 관리부에 근무한 강인석(30)씨는
IMF로 색다른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는 직장 동료의 소개로 만난 한 여성과 사귄끝에 이달 중순 약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 바람으로 지난달초 강요된 "희망퇴직"을 해야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여자집에서 파혼통지가 날아들었다.

극심한 불황은 이처럼 수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아픔을 가져다 주고 있다.

대기업이나 대형금융기관이라해서 결코 무풍지대가 될 수 없다.

한보 삼미 진로 극동 해태 기아등 대기업의 잇딴 좌초는 기존질서와 사고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평생직장의 신화는 깨졌다.

영원한 직업은 있어도 영원한 직장은 없게 됐다.

재직중에 이직이나 창업을 생각하는 것도 더이상 부도덕한 일이 아니게
됐다.

변화된 시대속에 샐러리맨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다.

< 김재창 기자 char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