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2년 "증권파동"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는 윤응상씨가 29일 오전
6시 영동세브란스병원서 별세했다.

향년 83세.

발인은 31일 오전 8시 (572-0099).

유족으로는 2남2녀가 있다.

증권파동이란 62년 5월을 전후해 대한증권거래소주식과 한국전력주를
특정세력이 매집,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려 했으나 월말 대금결제를
하지못해 증시가 마비됐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군부세력이 공화당창당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 정치.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와 미국이 당시 극
비문서에서 "재정쿠테타"라고 불렀다.

윤씨는 이 사건당시 영화증권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이 주식거래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윤씨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지난 39년 일본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해방후 동양통신사 전무, 한국비료사장을 역임했다.

그가 증권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58년 경희증권 고문을 맡으면서였다.

그는 증권파동이 일어나기 직전 파동의 주요창구가 됐던 통일.일흥증권을
설립,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