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의 부실시공에 대해 이 사실을 발표한 고속철도공단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묘한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다.

"경부고속철도의 부실결과는 실제보다 크게 과장됐다. 조용히 처리해도 될
일을 언론에 크게 발표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건설교통부 모 국장)

"부실책임을 미리 피하기 위해 고속철도공단 이사장이 언론플레이를 한게
아니냐"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소속 의원)

일부 의원이나 관료들은 김한종 고속철도공단이사장의 부실시공 발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도의 "음모론"으로까지 비하시키고 있다.

정부와 국회 쪽에서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자 김한종 고속철도공단이사장은
부실시공 책임을 진다며 23일 건교부에 사표를 냈다.

김이사장의 사표는 반려됐지만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사표가 부실시공 자체에 대한 책임보다는 과감하게 부실을 "폭로"한 것에
대한 문책 분위기속에 제출됐기 때문이다.

책임전가만 하다보니 부실시공 원인을 밝혀 안전한 고속철도를 건설하자는
대책은 아직 본격화되지도 않은 상태다.

정작 책임질 사람은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
사태를 조기에 종결하자는 조짐만 엿보인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건교부는 현재 고속철도가 이처럼 부실하게 시공된데
대해 명확한 책임소재도 못밝히고 있다.

누가 고속철도의 아이디어를 냈고 어떠한 과정으로 정책화됐고 공사가
진행됐는지 밝히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국회도 진지한 대책논의는 별로 없고 의원들의 고함소리만 요란하다.

정부나 국회에서 조차 본질적인 원인 규명보다는 일단 위기만 면하고
보자는 면피위주의 분위기가 만연한다면 고속철도는 우리의 자부심이 아니라
멍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최인한 < 사회1부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