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유가 그룹 돌림자를 따라 LG칼텍스정유로 이름을 바꿨다.

합작 회사명을 집어넣어 이름이 길어졌지만 창립 29년만에 ''명실공히''
LG그룹의 일원이 된 셈이다.

LG칼텍스정유는 개명과 함께 21세기 비전도 제시했다.

LG의 명패를 달고 명실상부하게 ''제2도약''을 꿈꾸고 있다고나 할까.

LG칼텍스호의 조타수인 허동수사장은 대학시절 태권도부 주장을 했을 정도
로 운동을 좋아한다.

저녁에 퇴근하면 동네를 한 시간 정도 걷는 취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회사이름을 바꾸고 나선 몸과 마음이 바빠 ''걸어 다닐'' 시간이
없단다.

회사명 변경사실을 널리 알리느라 정신이 없는 허사장을 유화선 본사
부국장대우 산업1부장이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빌딩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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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름을 바꾸는데 꽤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칼텍스측과 협의가 잘 안됐던 모양이지요.

<> 허사장 =협의가 잘 안됐다기 보다는 합리적으로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칼텍스측에선 회사 이름을 바꾸는 것도 좋지만 "고객이 정말로 원하느냐"를
물어왔어요.

초일류기업답게 확실히 알아보자는 요구였지요.

확실히 하자는데 우리라고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소비자 조사를 하느라 시간을 끌게 된 거지요.

-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확실하게 나왔나요.

<> 허사장 =예상대로 였어요.

한국갤럽과 LG애드 그리고 미국의 머서사등 3개 기관에 의뢰한 결과가
모두 같았습니다.

회사 이름을 바꾸는게 좋겠다는 응답이 설문 대상자의 70% 이상 나왔거든요.

-호남정유라는 이름을 버리는데 아쉬움은 없었습니까.

<> 허사장 =30년을 써 온 이름인데 왜 미련이 없었겠어요.

그러나 대세를 따르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옛날 이름으로는 안된다는 생각
이었지요.

소비자 조사에서도 세계화 시대엔 역시 "국내용"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설립 당시에 왜 "호남"이라는 이름이 들어 갔나요.

럭키 또는 금성정유라고 하지 않고..

<> 허사장 =박정희대통령이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제2정유사업자의
지역기반을 호남에 두도록 지시해 그렇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차원의 이름이 아니라 정책 차원의 이름이었다는 얘기지요.

-얼른 느끼기엔 "LG칼텍스정유" 보다는 "LG정유"가 더 짧아 좋을 것 같은데
"정책적"으로 "칼텍스"를 집어 넣었나요.

<> 허사장 =이름이 좀 길기는 하지만 합작 초기부터 유지해온 칼텍스와의
파트너십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러나 LG칼텍스정유는 어디까지나 "호적상 이름"입니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할 때는 그냥 LG정유예요.

주유소 간판도 그렇게 붙이기로 했습니다.

-자회사 이름도 다 바꿨지요.

<> 허사장 =그렇습니다.

세방석유는 LG정유판매로, 호유판매는 LG정유유통으로 개명했습니다.

이들 회사는 고객과 직접 만나는 유통회사여서 "법명"에도 칼텍스를
붙이지 않았어요.

다만 호유에너지는 LG칼텍스가스로 잠정 결정해 놓고 있습니다.

주총 정관 변경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지요.

호유해운은 당분간 이름을 바꾸지 않기로 했습니다.

-개명 효과는 어떠리라 봅니까.

판매가 많이 늘어날까요.

<> 허사장 =LG그룹 이미지가 묻어갈테니 아무래도 시너지효과를 보게
되겠지요.

회사나 그룹 내부에선 장미빛 예측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사업은 동적인 것입니다.

예측대로 꼭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요.

기름장사에서 셰어 1% 포인트 올리는게 얼마나 힘드는지 아십니까.

-이름을 바꿨으니 간판이나 각종 서식을 다시 만드는데 돈이 무척 많이
들겠죠.

<> 허사장 =하루 아침에 모두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지요.

주유소가 2천5백개나 되니까요.

그러나 주유소의 페인트를 매년 새로 칠하고 보수도 정기적으로 해온터라
이름을 바꿨다고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지는 않을 거로 봅니다.

올 8월까지 폴사인(주유소 입간판)을 다 바꾸고 연말까진 캐노피(주유소
천정)를 다 변경하려고 합니다.

한 50억 정도 쓰면 될 겁니다.

-회사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일종의 경영혁명으로 볼 수 있지요.

"혁명과업"을 조기에 완수하기 위한 복안은 있습니까.

<> 허사장 =우리는 "테크론"을 내놓은 이후 호남정유 보다는 테크론의
이미지를 더 키워 왔어요.

이 테크론을 자연스레 새 회사명과 접목시킬 작정입니다.

그래서 스무스하게 변혁기를 넘기면 혁명과업도 빨리, 계획대로 완수되지
않겠어요.

-새 이름을 정착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이 확대돼야 진정한 혁명완수
가 될 수 있겠지요.

<> 허사장 =그래서 우리는 중기목표를 이미 세워놓고 있어요.

2005년 목표매출을 30조원으로 잡아 세계 10대 종합에너지회사로 부상한다
는게 골자입니다.

10년후엔 회사가 지금보다 7배나 더 커져 있을 겁니다.

-매출을 그렇게 올리려면 새 분야에 신규진출도 많이 해야 할 텐데요.

<> 허사장 =물론입니다.

정유만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LG정유가 폴리프로필렌(PP)사업에 착수한데 이어 세계에서 제일 큰
파라자일렌(PX)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정유를 근간으로 수직계열화나 관련 다각화를 꾀해 나간다는 복안이지요.

연료전지등 대체에너지사업에도 진출해 종합에너지회사로 발돋움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습니다.

-칼텍스도 그런 신규사업에 동의하던가요.

<> 허사장 =사실 칼텍스는 자기들이 모르는 사업을 다각화하는데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그런 칼텍스도 LG정유만은 예외로 대해 줍디다.

경영성과가 좋으니 믿는 거겠지요.

합작사가 뒷다리를 잡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종합에너지 회사를 목표로 하는 만큼 앞으로 가스공사 민영화에도 적극
참여하시겠군요.

<> 허사장 =그건 LG정유와 관계없이 그룹에서 추진하는 사안입니다.

다만 LG정유는 에너지회사로서 그룹에 조언을 해야겠지요.

내 개인적으론 에너지를 담당하고 있는 CU(사업문화단위)장으로서 우리
그룹의 에너지분야가 확대개편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만.

-해외진출 계획은 없습니까.

<> 허사장 =만주와 시베리아 동구권 등에 대한 진출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해외에 진출하는 건 무리라고 봐요.

반드시 해외에 나가야만 국제화되는 것도 아니고요.

기술과 시설 등 모든 역량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갖추는 것도 국제화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내적 국제화가 된 다음에 해외에 나갈 생각입니다.

-석유사업 자유화로 내년부터 유가가 자유화되고 99년엔 석유정제사업이
개방되게 돼 있지요.

외국기업이 많이 몰려올 텐데 대책은 서 있습니까.

<> 허사장 =기업 체질을 바꿔야 겠지요.

사실 정유산업은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그동안 규제도 많이 받았지만 보호를
받은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온실 속에서 커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개방화 자유화 시대에는 그동안의 관행과 의식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게 됐지요.

그래서 완전 자유화된 시장을 상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임직원들의 마인드
를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바꿔 "혁명"을 했으니 잘 되지 않겠습니까.

-신규사업계획이나 매출목표를 공격적으로 잡아 놓았는데 소프트한 의식
혁명이 잘 될까요.

소위 질경영에 등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허사장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질을 더 중시하고 있어요.

이익과 생산성에 있어서 2005년에 세계 1위의 업체가 된다는게 우리의
진짜 목표입니다.

생산성은 지금도 국내에서는 1위이고 아시아에서도 최상위권입니다.

-2분법적이긴 합니다만 매출과 이익(질)의 두 가지중 하나만 택한다면
어느 쪽을 고르겠습니까.

셰어확대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이익추구입니까.

<> 허사장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글쎄, 굳이 말하자면 국내 대부분의 기업은 양적추구를 우선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직은 더 성장해야 하고 양적으로 열심히 키우면 결국 질적인 것도 따라
주리라 믿기 때문이죠.

우리 회사의 경우 질이 따라주는 균형있는 발전을 꾀한다는게 목표지요.

양만을 고집하던 일본의 경영자들도 지금은 질에도 눈돌리고 있거든요.

-지금 우리나라 정유업계를 보면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기가 어렵게
돼있지 않습니까.

경쟁이 너무 심해 이전투구하는 상황 아닌가요.

<> 허사장 =페어 룰(Fair Rule)을 통해 공정경쟁을 한다면 겁날게 없어요.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봐요.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과당경쟁이 문제지요.

국내 시장이라는 파이는 하나뿐인데 우리끼리 언제까지나 그렇게
싸우겠어요.

서로 개방됐을 때를 대비해 공정경쟁 풍토를 마련해 나가야겠지요.

-정유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지요.

이 산업에 종사하면서 맛본 매력은 무엇인가요.

<> 허사장 =장치산업은 기술이 급변하지 않습니다.

정유나 석유화학은 특히 그렇다고 봅니다.

대체로 10년 정도고 길게는 20년이 넘어야 새 기술이 나오지요.

문제는 타이밍이에요.

어떤 이는 타이밍을 잘 맞춰 성공을 하는데 어떤 이는 그걸 놓쳐 실패하고
마는 것이죠.

타이밍만 맞추면 참 재미있는 사업입니다.

-항상 타이밍을 잘 맞춰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 허사장 =웬걸요.

한번 큰 실패를 할 뻔 했어요.

1차 오일쇼크 직후인 지난 75년께 하루 15만배럴짜리 정유공장을 증설했다
가 혼쭐이 났었습니다.

기름소비가 급속도로 늘어 매년 10만배럴짜리 정유공장이 신설돼야 한다는
판단에서 대규모 증설을 단행한 건데 완공을 1년 앞두고 2차 오일쇼크가
터졌어요.

정제공장은 하루 38만배럴 짜리로 키워놨는데 15만배럴이 그대로 남아
버렸어요.

그때 이곳 저곳 불려다니며 질책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다행히 이게 전화위복이 됐어요.

칼텍스에만 한정됐던 원유도입선을 다변화할 수 있었고 남는 물량을
소화하느라 수출역량도 키울 수 있었던 거지요.

-작년엔 호유해운의 씨프린스호 사건이 있었지요.

LG그룹의 환경위원장으로서 환경친화적 경영에 대한 생각이나 구상도
남다를 텐데요.

<> 허사장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생산만 많이 하면 괜찮다는
그동안의 "생산조건 우위" 인식을 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미덕으로 간주되고 일회용 상품을 만드는게
장려되기도 했었지요.

큰 것이 좋다고도 했고요.

그러나 기업경영에서 이런 전제는 더 이상 통할 수도 없고 통해서도
안됩니다.

환경문제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됐기 때문이죠.

LG그룹의 환경친화적 경영도 이런 틀안에서 마스터플랜을 짰어요.

인류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방향을 전제로한 성장이 골자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생존이 기업의 생산조건을 규정짓는 "생존조건 우위"
경영을 하겠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게 앞으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거든요.

-구본무그룹회장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 허사장 =그룹 회장과 CU장의 관계일 뿐입니다.

공적으로도 그렇고 사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허씨라 그룹내 구.허양가의 가교역할을 하는 걸로 아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어디까지나 프로페셔널한 경영자예요.

자라온 환경과 배운걸 보세요.

화학공부를 해 미국서 박사학위를 딴 뒤 정유회사인 셰브론에서 근무
했었거든요.

< 정리=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