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재건축사업 첫 단계인 안전진단 문턱이 낮아져 전국 151만여 가구가 규제 완화의 혜택을 볼 전망이다. 안전진단 완화로 재건축 기대가 커지고 있는 서울 목동 아파트단지. /한경DB
다음달부터 재건축사업 첫 단계인 안전진단 문턱이 낮아져 전국 151만여 가구가 규제 완화의 혜택을 볼 전망이다. 안전진단 완화로 재건축 기대가 커지고 있는 서울 목동 아파트단지. /한경DB
다음달부터 재건축사업 첫 단계인 안전진단을 통과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요소인 ‘구조 안전성’ 비중이 현행 50%에서 30%로 낮아지고, 2차 정밀안전진단(적정성 검토)은 지방자치단체(시·군·구)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된다. 안전진단 문턱을 확 낮춰 민간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입주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전국 151만여 가구가 규제 완화의 혜택을 볼 전망이다.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적정성 검토 필요)이나 ‘재건축 불가’(유지·보수) 판정을 받은 아파트 단지도 완화된 규정을 적용해 평점을 다시 부여받게 된다.

○2차 정밀안전진단 사실상 폐지

국토교통부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안전진단(예비 안전진단→1차 정밀안전진단→2차 정밀안전진단)의 마지막 관문이자 2018년 3월 의무화된 적정성 검토가 사실상 폐지된다. 지금은 민간 업체가 시행하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국토안전관리원 등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앞으로는 지자체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받는 것으로 바뀐다. 국토부 관계자는 “1차 정밀안전진단 때 평가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자료 제출이 미흡했거나 명백한 오류가 발견된 경우에 한해 적정성 검토를 요청하도록 할 방침”이라며 “적정성 검토를 받지 않으면 사업 기간이 최소 7개월 단축되고 1억원 안팎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턱 낮아진 재건축 안전진단…서울 30만 가구 혜택
기존에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아 적정성 검토를 준비하던 곳도 완화된 규정으로 다시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9·11단지 등 과거 적정성 검토에서 최종 탈락한 곳은 재건축을 추진하려면 예비 안전진단 절차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는 총점 구간을 줄이고, 곧바로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했다. 현행 안전진단에선 평가 항목별 점수를 합산해 총점 30점 이하(E등급)면 즉시 재건축, 30점 초과~55점 이하(D등급)는 조건부 재건축, 55점 초과(C등급)는 재건축 불가로 판정하고 있다. 국토부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 구간을 45점 초과~55점 이하로 축소하고, 즉각 재건축 대상을 현재 30점 이하에서 45점 이하로 넓히기로 했다.

○‘재건축 가능’ 단지 21곳→35곳

국토부는 현행 50%인 구조 안전성 비중을 30%로 낮추는 대신 ‘주거 환경’(15%→30%),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25%→30%) 등의 배점을 높이기로 했다. 건물 골조에 문제가 없어도 주차 공간이 부족하거나 배관이 낡아 녹물이 나오는 등 열악한 주거 환경만으로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월 재건축 시장 과열을 막겠다며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종전 20%에서 50%로 높였다. 기준 강화 전 34개월간 전국 139건, 서울 59건이던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기준 강화 후 지난달까지 56개월간 전국 21건, 서울 7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국토부 시뮬레이션 결과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이 시행되면 2018년 3월 이후 안전진단을 받은 전국 46개 단지 중 35곳(즉각 재건축 12곳, 조건부 23곳)이 재건축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21곳보다 14곳 늘어난다. 안전진단 완화 방안은 이달 행정예고를 거쳐 다음달 시행될 예정이다.

○목동·상계동 재건축 탄력

안전진단 기준 완화로 지지부진하던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 등의 노후 아파트 단지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재건축 가능 연한(준공 후 30년)을 채웠지만,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200가구 이상)는 전국에 2687곳, 151만 가구에 달한다. 서울에선 389개 단지, 30만4862가구가 규제 완화 혜택을 본다.

부동산업계에선 서울 양천구와 노원구 일대 초기 재건축 단지를 최대 수혜 단지로 꼽는다. 양천구에선 목동신시가지9·11단지가 2020~2021년 적정성 검토에서 차례로 탈락한 뒤 2만6629가구의 목동신시가지 재건축이 사실상 완전 중단된 상태다. 목동신시가지 14개 단지 중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곳은 6단지가 유일하다. 노원구에선 상계주공 16개 단지 중 5단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을 진행 중이다. 1단지와 6단지는 적정성 검토를 앞두고 있다.

목동신시가지9·11단지는 과거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각각 58.55점, 58.78점을 받았다. 본지 시뮬레이션 결과 구조 안전성 가중치가 현행 50%에서 30%로 하향되면 두 단지의 총점은 합격권(55점 이하)인 52.90점, 53.89점으로 낮아진다. 2021년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60.07점을 받았던 노원구 태릉우성도 안전진단 기준 완화 시 54.25점으로 재건축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업계에선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도 주택 매수 심리가 호전되거나 재건축 추진 단지가 급격히 늘어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등 재건축 ‘대못 규제’가 아직 남아 있어 가시적인 공급 확대 효과가 나타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목동 일대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 소식에도 ‘거래 절벽’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목동 A공인 관계자는 “재건축 추진 기대가 집값에 선반영된 데다 금리 인상으로 집값 추가 조정 가능성도 있어 매수세를 자극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