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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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집값도 최근 수년간 한국만큼 많이 올랐다. 2019년 12월부터 작년 11월까지 24개월 동안 무려 23.8% 상승했다. 역대급 속도다. 그런데 이런 상승세의 절반 이상이 재택근무 때문이란 연구보고서가 발표돼 화제다. 미국 민간 연구조직인 미국경제연구소(NBER) 최신 보고서로 올라온 '주택 수요와 재택근무'가 그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연방준비은행의 존 먼드래곤과 UC샌디에이고의 조핸스 윌랜드는 이 논문에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재택근무 확산이 도시 간 이주 수요를 늘렸고, 연이어 주택 수요 급증과 집값 및 임대료 상승을 불렀다고 분석했다. 물론 재택근무에 따른 더 넓은 자가 주택 보유 심리가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 그동안 없진 않았다. 다만, 먼드래곤 등은 이 효과가 집값을 15.1% 끌어올렸다는 구체적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에 집값 급등을 몰고 온 주범은 투기적 거품도, 재정지출 확대나 저금리 같은 부양책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 기초체력) 요소라 볼 수 있는 근무형태의 변화였다는 주장이다. 미국 안에서도 재택근무가 더 일반화된 지역의 집값이 더 뛰었다고 한다.

이번 분석이 갖는 함의는 적지 않다. 재택근무가 미래 집값과 주거비용,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여부를 결정할 중요 요소라는 점에서 이런 근로형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정책 당국이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지금도 근로자의 42.8%가 재택근무(풀타임, 파트타임 모두 포함)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의 상당 부분이 앞으로 지속될 것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집값도 집값이지만, 물가상승률 8%를 넘기며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이 미국과 세계 경제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가파른 금리 인상도 예고된 상황이다. 정책 당국만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시대 모든 경제주체들이 미국 내 재택근무 양상의 변화를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물론 한국 내 상황은 다르다. 취업 플랫폼 사람인이 국내 8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시행 및 지속 여부'에 관해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3%가 코로나 확산 이후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거의 다 풀린 지금은 응답 기업의 15%만이 재택근무 방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면 재택'이나 '일괄 출근' 대신 '하이브리드' 근무형태를 도입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재택이냐 출근이냐'를 놓고 직원들에게 선택하도록 해 업무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도 있다.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네이버의 사내 설문에선 직원의 약 55%가 '전면 재택'을 원했다고 한다. 첨단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이런 요구가 이어지면 국내에서도 재택근무 형태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시 못 할 근무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재택근무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일상화된다면 업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좀 더 넓고 쾌적한 주택, 일과 생활에 모두 불편함이 없는 주택 입지 및 주변 생활여건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도심 오피스타운의 빌딩 임대료는 떨어질지 몰라도 쾌적한 도시 외곽의 주택 임대료와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 이번 연구결과를 미국 얘기로만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