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뉴스1
서울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뉴스1
주부 박재숙 씨(35)는 최근 청약저축 통장 해지를 고민하고 있다. 박씨는 2015년 청약저축에 가입해 남편과 본인 통장에 각각 매달 20만원씩을 넣고 있다. 부부 모두 청약 1순위 자격 요건을 갖췄지만, 당첨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사실 박씨 부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수십번 청약에 나섰지만 번번히 떨어졌다. 서울에서 분양하는 단지들의 당첨 가점은 60~70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직 아이가 없어 가점이 낮다”며 “청약 당첨 가능성이 희박해 목돈을 청약통장에 묶어두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모아 서울 외곽에 구축 아파트를 사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수도권 ‘로또 청약’ 광풍으로 가점 만점자가 속출하고 당첨 커트라인이 더 높아지면서 청약 가점이 낮은 20·30대 실수요자의 회의감이 더 커지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해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다. 더군다나 1순위 가입자만 1500만명에 달해 희소성도 사라지며 청약통장 무용론도 힘을 얻고 있다. 청약을 포기하는 이른바 '청포족(청약포기족)'도 속속 늘고 있다.

청약통장 가입자 3개월 연속 둔화

10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청약통장 가입자 수 증가세가 3개월 연속 주춤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 청약저축, 청약예금·부금) 가입자 수는 2797만406명으로 집계됐다.

주택청약종합저축 2634만716명에 대부분의 가입자가 몰린 가운데 이 시기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증가폭은 7만6371명으로 올해 1월(15만5400명)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증가폭은 4월(11만2236명)에 이어 5월(8만7594명), 6월(7만6371명) 3개월 연속 줄었다.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창구에 놓인 청약통장 관련 안내문.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창구에 놓인 청약통장 관련 안내문. /연합뉴스
청약당첨을 위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한 상황에서 분양가까지 오르자 청약을 포기하는 '청포족'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일반분양한 래미안 원베일리에 당첨된 사람들의 평균 가점은 72.9점이었다. 6가구만 모집한 74m²B 주택형에서는 만점(84점)짜리 청약통장도 나왔다. 원베일리는 1순위 청약에서 3만6116명이 몰려 평균 161.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에 이어 경기도 청약에서도 만점 통장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달 당첨자를 발표한 파주 운정신도시 A11블록 중흥S-클래스 에듀하이 84㎡A 주택형 기타지역 당첨자 최고점은 74점으로 나타났다. 안양 평촌에서도 트리지아 74㎡ 주택형이 38대 1이 넘는 경쟁률로 1순위 마감된 가운데, 당첨자 중 최고 가점은 74점이었고 당첨자 평균 가점도 66점이 넘었다.

올해 상반기 서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124.7대 1이었다.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다. 최저 평균 가점 역시 지난해 하반기 60.6점에서 올해 상반기 60.9점으로 올랐다. 청약 가점 60점은 부양가족 두 명 기준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각각 최소 14년 이상이어야 도달할 수 있다. 사실상 20·30대는 청약에 당첨 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40대도 극소수만 해당된다.

일부 맞벌이, 신혼 특공도 어려워

그나마 가점제를 우회해 청약이 가능한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도 경쟁 과열로 3040세대의 당첨이 쉽지 않다. 수도권 특별공급 경쟁률은 2019년 5.4 대 1에서 지난해 약 세 배인 15.1 대 1로 올랐다. 그마저도 소득 기준(2021년 민영주택 맞벌이 기준 세전 월 889만원)이 있어 급여가 이보다 높으면 아예 지원 자격이 없다.
서울시 송파구 장지동에 마련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한 방문객이 일정 등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송파구 장지동에 마련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한 방문객이 일정 등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는 “돈이 없어서 맞벌이를 하는 것인데 소득 기준에 걸려 넣을 수 있는 청약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스스로를 ‘흙수저 맞벌이’라 칭하는 대기업 직장인 한모 씨(33)는 지난달 서울 도봉구에 집을 샀다. 청약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소득 기준을 넘겨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가점도 20점대에 불과해 일반분양 역시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씨는 “청약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왕복 출퇴근 시간만 3시간이 넘는 외곽에서 결국 작고 오래된 아파트를 매매했다”며 “뉴스에서 고가점 현금부자들이 강남 아파트 청약에 성공해 단숨에 10억~20억원을 벌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분양시장에서 마저 소외받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혼부부 특공을 둘러싼 갈등은 사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3기 신도시 생애최초 신혼부부 특별공급 소득 기준 폐지’, ‘대기업 흙수저는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야하나요’ 등의 제목을 단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서 청원인들은 “결혼 평균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긴 신혼부부들은 일선에서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일한 청년들”이라며 “직급이든 호봉이든 높게 책정된 상태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외벌이와 맞벌이의 소득 기준 차이가 10%인데 맞벌이의 경우 한 명이 500만 원을 벌면 다른 한 명은 50만 원을 벌어야 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며 “대기업 흙수저가 가장 불쌍하다. 생애최초나 신혼부부 특공은 대기업 맞벌이면 꿈도 못 꾼다”고 지적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