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에서 최종 탈락한 서울 양천구 목동11단지.
안전진단에서 최종 탈락한 서울 양천구 목동11단지.
잇단 정밀안전진단 통과 소식으로 순항하는 듯했던 서울 양천구 목동 재건축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9월 목동9단지에 이어 목동11단지까지 공공기관이 시행하는 적정성 검토에서 C등급을 받아 최종 탈락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는 모두 1985년 중후반에 지어져 비슷한 안전도 평가가 나올 것”이라며 “다른 단지들이 안전진단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목동9단지 이어 11단지도 탈락

1988년 준공된 목동11단지는 총 19동, 1595가구 규모의 대단지다. 서울지하철 2호선 양천구청역과 가까워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중에서도 입지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해 6월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51.87점)을 받아 조건부 통과했다.

하지만 목동11단지가 안전진단에 최종 탈락하면서 총 14개 단지, 약 2만6600가구로 구성된 목동 신시가지 재건축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목동 1·2·3·4·5·7·10·13·14단지가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받고 있다. 이 중 속도가 가장 빠른 5단지는 국토안전관리원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목동 A공인 관계자는 “지난 24일 목동12단지가 정밀안전진단에서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역대 최저점인 49.15점(D등급)을 받아 통과하는 등 연이은 호재로 주민들의 기대가 컸다”며 “하지만 11단지의 탈락으로 고조된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중 8단지를 제외한 모든 단지가 정밀안전진단 문턱을 넘어선 상태다. 하지만 적정성 검토까지 최종 통과한 단지는 목동6단지 단 한 곳이다.

안전진단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안전진단 통과가 까다로워진 것을 모르고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목동6단지는 통과했는데 9단지, 11단지는 왜 탈락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양천구청 측은 목동11단지 안전진단을 시행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탈락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공식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을 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장현주  기자
재건축을 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장현주 기자
주민들의 강한 반발도 예상된다. 안전진단 통과 실패에 따른 실망 매물이 쏟아지면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목동9단지가 최종 탈락한 이후 일부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에는 ‘비가 오면 천장 샌다’ ‘죽기 전에 신축지어 멀쩡한 집 살고 싶다’ 등이 적힌 붉은색 대형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규제 완화 없이는 재건축 힘들어

더 높아진 안전진단 문턱…"규제 안 풀면 목동 재건축 힘들다"
목동11단지의 안전진단 탈락으로 재건축 안전진단 마지막 문턱인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추진 중인 다른 지역 단지들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재건축 ‘대어’ 송파구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를 비롯해 송파구 풍납미성, 강동구 삼익그린2차, 양천구 신월시영 등 최근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아파트들이 적정성 검토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안전진단 현장조사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를 강화한 ‘6·17 부동산 대책’ 이후 적정성 검토 통과가 크게 어려워졌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적정성 검토에서는 민간 업체가 진행하는 정밀안전진단과 비교할 수 없이 철저한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6·17 대책 발표 이후 적정성 검토를 최종 통과한 서울 아파트는 도봉구 ‘삼환도봉’(660가구) 한 곳에 불과하다. 국토안전관리원 관계자는 “기존에는 필요할 때만 현장조사를 하고 그 기간도 반나절 정도에 그쳤다”며 “하지만 6·17 대책 이후 규모가 작은 단지는 1~2일, 큰 단지는 2~3일씩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사업 첫 단추인 안전진단부터 제동이 걸리면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들뜬 민간 재건축 시장이 차갑게 식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야 후보들이 재건축 규제 완화를 강조하면서 목동·압구정·여의도 등 민간 재건축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목동7단지 전용면적 53㎡는 지난 1일 15억원에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2월 14억6000만원에 거래된 주택형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 재건축 시장의 기대가 컸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등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없다”며 “정부가 규제를 풀기 전엔 재건축이 사실상 막힌 상태”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