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 재건축 단지의 철거 당시 모습. 전형진 기자
서울 강남 한 재건축 단지의 철거 당시 모습. 전형진 기자
정부가 세금을 무기로 집값 상승을 억제하자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하루가 멀다하고 개정된 세법 때문에 납세자는 물론 과세당국까지 실수를 연발하면서 수억원의 세액이 뒤바뀌고 있다. 부동산 규제로 때 아닌 호황을 누리던 세무업계에선 분쟁에 휘말리는 세무사들이 늘고 있다.

◆세무서도 ‘오락가락’

13일 세무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세무서에서 5억원가량의 세금을 덜 걷을 뻔한 일이 일어났다. 신고된 양도소득세액은 6억원 안팎인데 세무서에선 이를 과다신고된 것으로 오인해 결정세액을 1억원가량으로 본 것이다. 매도자의 보유기간에 따른 장기보유특별공제율(장특공제)을 따지는 데 혼선이 빚어진 탓이다.

매도인은 2009년 한 재건축 아파트를 매수하고 2016년 준공과 함께 입주한 뒤 지난해 연말 매각했다. 양도차익만 2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1주택 비과세와 장특공제를 적용하면 양도가액 9억원까지 비과세를 받고 초과분에 대해선 80%(연 8%·10년)까지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 매도인은 10년 동안의 보유기간을 모두 인정받진 못했다.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경우 입주권 상태에서의 보유기간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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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소득세법’은 정비사업구역 주택의 입주권 전환시점을 관리처분계획인가일로 본다. 그러나 2005년 5월30일 개정 전 세법은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입주권 전환일을 사업시행계획인가일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단지는 2005년 5월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아 종전규정이 적용된다. 매도인의 보유기간은 총 10년이 아니라 해당 단지가 준공된 이후부터 3년으로 계산되는 셈이다. 매도인의 세무대리인이 이에 맞춰 양도세를 정확히 신고했지만 오히려 세무서에서 세액을 과다신고한 것으로 보고 내부 검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례가 최근 2~3년 새 부동산 관련 세제가 누더기가 될 정도로 개정된 부작용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집값 상승을 막겠다며 양도세 비과세와 중과, 거주기간 기산, 임대사업자 관련 특례 등이 여럿 바꿔왔다. 하지만 예외규정이 한둘이 아닌 데다 취득 시기 등에 따라 종전규정이 적용되는 경우도 많아 혼선이 불가피하다.

한 부동산 전문 회계사는 “혹시 모를 책임을 떠안지 않기 위해 부동산 관련 세무대리를 피하는 세무사들이 늘고 있다”며 “세법이 너무 복잡해 정밀한 해석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강남 ‘1기 재건축’ 단지들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은 곳들이 많다”며 “보유기간을 혼동하는 비슷한 세금사고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잘못 신고했다 세무사가 ‘덤터기’

수도권의 한 신도시에선 세무서가 관내 임대사업자들에게 받았어야 할 세금 30억원가량을 덜 걷는 일이 일어났다. 임대사업자의 거주주택 비과세와 중과배제 요건을 혼동해서다. 결국 국세청 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부랴부랴 징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는 임대사업자가 매각한 거주주택의 세금을 따지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임대사업자가 2년 이상 살았던 자신의 거주주택을 매각할 때는 9억원까지 비과세가 가능하다. 임대로 등록한 주택의 숫자가 얼마든 비과세를 판단할 땐 주택수에 가산하지 않아서다.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면 된다. ‘임대주택 외 1주택’ 상태라면 일반 1주택자와 마찬가지로 보유기간에 따른 장특공제도 적용된다.

그러나 임대사업자가 갈아타기용 대체주택을 구입한 상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임대주택 외 1주택’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9억원 초과분에 대한 세금은 중과세율로 따져야 한다. 거주주택과 임대주택, 대체주택까지 합쳐 3주택이라면 최고 62%의 세율이 적용되는 식이다. 이땐 장특공제도 적용되지 않아 세액이 급증한다. 과세당국이 서너 건만 검증을 잘못 해도 미추징 세액의 규모가 순식간에 불어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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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면주택의 경우도 임대주택과 똑같은 사례가 적용된다. 감면주택이란 ‘조세특례제한법’에서 규정한 특정 시기의 신축 또는 미분양 주택 등을 말한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세제 혜택을 준 집들이지만 중과세를 판단할 땐 주의가 필요하다. 김종필 세무사는 “감면주택 외 1주택일 땐 고가주택이더라도 양도세 중과에서 제외되지만 주택 숫자가 더 많다면 장특공제 배제와 중과세가 동시에 일어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복잡한 규정 세무사들의 고충도 늘고 있다. 세액을 잘못 신고했다가 납세자와 책임 소재를 다투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무사는 “세법 조문이 명쾌하지 않은 경우 사안별로 유권해석을 기다릴 때가 많다”며 “최근엔 한 시중은행 PB에서도 양도세 사고가 터져 소송이 거론됐다”고 말했다. 김호용 미르진택스 대표는 “세무사고로 납세자가 내야할 세금이 증가한 경우엔 불성실신고에 대한 가산세를 세무사가 짊어져야 한다”며 “세액이 큰 경우엔 세무사가 본세를 분담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