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에 몰린 인파들(사진 연합뉴스)
모델하우스에 몰린 인파들(사진 연합뉴스)
지금이야 인터넷 쇼핑몰이 많지만, 10여년 전만해도 쇼핑을 하려면 봄·가을 백화점의 정기세일을 기다리곤 했다. 벼르고 있었던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신상을 사면서 '어차피 이 가격에 팔아도 남을 거면서 왜 그렇게 비싸게 팔았지'라며 뿌듯해 하곤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이 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일기간에 가면 내가 원하는 옷은 드물었으니 말이다. 사이즈가 없거나 컬러가 없거나, 다른 매장에서 주문을 해야하는 경우들이 늘면서 '세일 쇼핑'은 재미가 없어졌다. 마음에 '딱' 드는 옷을 사려면 세일 전에 서둘러야하고, 세일 때에 산다면 적당히 마음에 드는 옷에 만족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꼭 맞진 않겠지만, 현재 아파트 분양 시장도 이러한 모양새다. 분양가 상한제라는 세일이 눈 앞에 있지만, 내가 원하고 살고 싶은 집을 사기는 어려울 게 뻔하다. 지난 세일에도 그 전 세일에도 그랬으니 말이다. 경험이 있다보면, 대기 수요자들은 서두르는 법이다.

지난 30일 문을 연 모델하우스에는 서울은 물론 수도권까지 문전성시를 이뤘다. 거여동 거여2-1 재개발하는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은 대규모 단지다보니 수만명이 몰렸고, 응암2 재개발하는 ‘녹번역 e편한세상 캐슬 2차’과 홍제동 1주택을 재건축하는 ‘서대문 푸르지오 센트럴파크’의 모델하우스도 북새통이 연출됐다. 방문객들은 대부분 실수요자들이었다.
 모델하우스에 몰린 인파들(사진 연합뉴스)
모델하우스에 몰린 인파들(사진 연합뉴스)
실수요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어차피 지금도 시세보다 낮은 아파트'여서다. 앞으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가 나오더라도 조건이나 전매가 까다로울 것이고, 당첨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봐서다. 공급자들도 때를 놓치지 않고 서두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달에만 전국에서 아파트 4만4673가구가 공급되고, 이중 3만403가구가 일반분양될 예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서울에서 청약경쟁률이 200대1을 넘는 기록이 나왔다. 대우건설이 동작구 사당동에서 분양한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의 1순위 청약에서 89가구 모집에 1만8134명이 신청한 것이다. 평균 청약경쟁률이 203.75대1을 기록했다. 너도나도 뛰어든다는 강남 재건축도 아니고, 비강남권 재개발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높은 경쟁률을 보인 이유는 '막차효과'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경험'과 '규제의 역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수요자들은 이미 새 아파트 경쟁력을 경험했고, 공급 불안이 예상되는 가운데 심리가 움직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규제가 오기 전에 서두르자는 막차 효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경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사업 추진이 더딜 수 밖에 없다. 결국에는 공급감소로 새 아파트 희소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규제로 아파트의 분양가가 이미 주변시세 대비 경쟁력도 있는 상태라는 분석이다.
[김하나의 R까기] 아파트 세일한다는데, 왜 지금 모델하우스에 갈까요?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에서 서울 청약경쟁률을 뽑아보면 이처럼 규제를 앞두고 혹은 규제 직후에 쏠림이 많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에서 최근 10년간 가장 경쟁률이 높았던 단지는 서초구 잠원동에서 2016년 1월 분양했던 '아크로리버뷰'였다. 28가구 모집에 8585명이 몰려 306.61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저층 중심으로 소량만 일반분양으로 나온데다 분양가는 주변 시세 보다 낮았다. 당시에는 전매제한이 6개월이었다.

2위는 이번에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분양된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이었고, 3위는 '신반포센트럴자이'였다. 2017년 8·2대책 이후 강남권 첫 분양 아파트였다. 4위인 '용산롯데캐슬센터포레'는 2016년 11·3부동산대책이 발표되기 직전에 공급된 단지다. 1순위 청약에서 서울 우선이 없었던 시기여서 157가구 모집에 2만4486명이 몰렸다.

최근 입주가 진행중인 '디에이치아너힐즈'는 역대 5위를 기록했다. HUG와 분양보증을 두고 힘겨루기를 했던 단지로 분양가가 당초 3.3㎡당 평균 4457만원에서 4137만원으로 낮아졌다. 가격이 낮아진만큼 인파도 몰렸다. 63가구 모집에 6339명이 몰려 100.62대 1의 1순위 경쟁률을 나타냈다.

서울에서 상위권 청약경쟁률을 나타냈던 아파트들은 '규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상위권 아파트들의 공통점이 하나더 추가됐다. 바로 '분양가 대비 매매가 상승률이 높은 아파트'다.

KB리브온이 전국에서 입주 2년 미만 새 아파트들의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1위는 '아크로리버뷰'였다. 이 단지의 3.3㎡당 평균 분양가인 4233만원이었지만, 매매가격이 7705만원으로 올라 82%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2위는 3.3㎡당 매매가격이 7031만원으로 평균 분양가(4457만원)와 비교해 2574만원의 웃돈이 붙은 '신반포자이'였다. 3위는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였고 '삼성동 센트럴아이파크', '반포래미안아이파크' 등이 뒤를 이었다. 대부분 강남 아파트로 매매가격이 많이 오른 탓도 있지만, 분양가를 억지로 누르면서 초기 공급 가격이 낮았던 이유도 있다. 정부 정책이 보증해주는 '로또 아파트'가 입증된 셈이다.

최근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정부 안팎에서 잡음이 들리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발표대로 오는 10월부터 시작될런지, 아니면 시행조차 불투명할지를 두고 말이 많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 속에 시장은 불안을 먹으면서 커 나가고 있다. 새 아파트들이 전고점을 돌파하면서 최고가를 다시 기록하고 있다. 3.3㎡당 1억원에 거래됐다는 '아파트설'까지 나돌면서 시장은 실수요자인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