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들어서면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올해는 예비 임차인들이 눈치를 보면서 전세 호가가 더 낮아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내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서울 강남구 대치동 O공인 대표)

서울 대치동 목동 중계동 등 ‘명문 학군’으로 불리는 동네들도 전셋값 하락 흐름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지역 전세 성수기는 겨울이다. 다음해 봄 새학기 시작에 대비해 들어오는 전세 수요가 많아서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새 아파트 입주가 늘어난 영향이다.
명문학군 전셋값, 오를 명분이 없었나
인기 학군 지역 전셋값도 약세

14일 일선 중개업소에 따르면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세가격이 최근 6개월 사이 2억원가량 떨어졌다. 지난 여름방학 때는 전용면적 84㎡가 15억~16억원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13억~15억원에 임차인을 찾고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이달 들어 4억5000만~4억7000만원에 전세가 나갔다. 작년 이맘때에 비해 2000만원가량 떨어진 수준이다. 대치동 B공인 관계자는 “인근 개포·일원동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가 줄을 잇다 보니 대기 임차인에게 대안이 많다”고 말했다.

목동 아파트 전셋값도 성수기에 이례적으로 2000만원 안팎 하락했다. 목동 K공인 관계자는 “이달 둘째주 들어 목동 신시가지 단지들이 전반적으로 호가를 2000만원 정도 내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목동 N 공인중개사는 “지하철 5호선 목동역과 가까워 가장 인기가 좋은 목동 7단지도 2년 전에는 전세 재계약을 할 때 8000만~1억원씩 올려 받았지만 지금은 가격 변동 없이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전세 수요가 넘쳐 1년 내내 높은 전세가격을 유지하는 중계동에서도 지난 9월 이후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중계동 청구3차 전용 84㎡는 9월 5억7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지난달엔 4억7000만원, 5억원 등에 세입자를 찾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번주(10일 기준) 강남구 주간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에 비해 0.1% 하락했다. 7주 연속 하락세다. 목동이 있는 양천구도 0.01% 내렸다. 중계동이 속한 노원구 전셋값도 0.02% 떨어졌다. 작년 12월 둘째주엔 강남구 전셋값이 0.18% 상승했고, 양천구는 0.09% 올랐다.

거래도 위축

명문 학군의 전세 거래량도 줄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대치동의 지난달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225건으로, 전월(286건) 대비 22% 줄었다. 목동은 10월 341건에서 11월 293건으로 15% 감소했다.

중계동 11월 거래량은 326건으로 전달과 비슷한 수준이다. 작년과 비교해서도 거래가 위축됐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지난해 12월 55건 거래됐지만, 올해는 4건밖에 전세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목동 N 공인중개사는 “외환위기 때도 가격이 내려갔을 뿐 전세 거래는 활발했다”며 “자녀들 겨울방학에 맞춘 이사철인데도 전세 거래가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학군 특수도 공급 앞엔 맥 못춰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가 전셋값 약세의 주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연말 들어 강남권에선 아파트 입주가 활발하다. 일원동에선 ‘래미안루체하임’(850가구)이 입주 중이다. 서울 송파구에는 9510가구 규모의 대단지 ‘헬리오시티’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대치동 G공인 관계자는 “대치동 학원가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지역에서 입주가 활발하다”며 “대안이 생긴 임차인들이 굳이 높은 가격에 계약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 전체적으로도 입주 물량이 풍부하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보다 16.3% 많은 4만2445가구”라며 “당분간 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전세 수요 감소가 최근 경기 침체와 관련돼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는 실수요라 거시경제가 나빠지면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급락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심정섭 더나음연구소 소장은 “한국인의 자녀 교육열이 워낙 높아 명문 학군을 찾는 수요가 줄어들기 어렵다”며 “전셋값이 크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주현/구민기/윤아영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