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72)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별 탈 없이 보냈다. 수많은 중견 주택업체가 쓰러졌지만 금성백조주택은 살아남았다.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선제 대응한 덕분이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 8개를 탐독하며 경제 동향을 살핀다. 지난달 27일 대전 서구 금성백조주택 본사에서 만난 정 회장은 “호황 때는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 때는 호황을 준비하는 것이 최고경영자(CEO)의 자세”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신규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고 밝혔다. 주택업계에 세 번째 불황이 찾아오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막내 인부에서 건설사 CEO로

정 회장은 뼛속까지 건설인이다. 열여섯 살부터 57년간 건설 현장을 누볐다. 유년 시절엔 지독한 가난이 그를 따라다녔다. 1946년 충남 대덕군 회덕면(현 대전)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열다섯 살 터울 큰누나가 고무신 공장에서 벌어온 월급 덕에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 붙었으나 열다섯 살 정 회장은 작은 가구 공장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도목수의 밑일꾼으로 일하며 건설 현장을 경험했다. “손재주가 좋다고 어른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가구 설계, 제작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군(카투사)을 제대한 뒤 스물다섯 살 때 처음 중견 건설업체에서 현장소장을 맡았다. 10년간 현장 20여 곳을 돌았다. 서른다섯 살이 되던 1981년 정 회장은 직원 3명과 금성백조주택을 세웠다. 정 회장은 그 뒤로 37년간 회사를 운영했다. 회사는 창립 이래 줄곧 흑자 행진이다. 설립 이후 빚을 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시공능력평가(도급) 순위도 꾸준히 올라 올해 50위를 기록했다.

‘빠르게’가 아니라 ‘바르게’

그는 37년 장수 비결로 ‘품질’을 꼽았다. 주택 외길을 걸으며 ‘빠르게’가 아니라 ‘바르게’를 강조했다. 그 덕에 충청권 2위 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정 회장은 “아파트만큼은 그 어느 주택업체에도 뒤지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금도 주말마다 아파트 현장을 돌며 마감 등 세세한 부분을 챙긴다. 설계사무소가 두 손을 들 정도로 품질과 설계 관련 회의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파트 부지는 신중하게 고른다. 토지 계약을 하기 전 해당 부지를 주중, 주말, 낮, 밤 등으로 시간을 달리해 수십 번씩 방문한다. 주택 기계 토목 환경 등 분야별로 전문가 10명을 모아 태스크포스(TF)를 꾸린다. 교통, 자연환경 등 100여 가지 요소를 분석해 부지를 선정한다. “땅은 사람 얼굴과 같습니다. 모습이 제각기 달라요. 꼼꼼하게 골라 조사해야 소비자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14년 11월엔 대전 유성구에 짓고 있던 멀쩡한 신축단지를 부쉈다. 공정률 32%, 3층까지 올린 상태였다. 당시 입주민 사이에서 아파트에 쓰인 콘크리트 압축강도가 기준치에 못 미친다는 소문이 돈 게 철거 이유였다. 실제로 강도가 낮은 건 아니었다. 대한건축학회에 세 차례나 측정을 의뢰해 국토교통부 검사기준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구조적 적합판정만으론 고객의 불신을 덜 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 철거 및 재시공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금융위기 선제 대응

정 회장은 위기관리 CEO로 불린다. 그는 외환위기가 닥치기 2년 전부터 위기관리를 시작했다. 1995년 6월부터 2년에 걸쳐 160명이던 직원을 80명으로 줄였다. 주택시장 침체를 예감해서다. 그 덕분에 우방 청구 건영 등 탄탄했던 중견 건설업체뿐 아니라 대우그룹 한보그룹 등 대기업마저 잇달아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정 회장은 “덕산그룹 부도 여파로 ‘대기업도 망하는데 중소기업은 더 못 믿겠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분양이 늘기 시작했다”며 “대기업 실적도 나빠지고 있어 극심한 침체기가 올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도 주택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1년간 준비해 온 괌 현지 법인 설립 계획도 중단했다. 정 회장은 “국내외 경제 통계를 들여다보니 부동산을 비롯한 한국 경제 전반에 거품이 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신규 사업을 접었습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에 이어 2008년 금융위기도 무사히 극복했다. 위기 상황이 벌어지기에 앞서 내부적인 체질 개선과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덕이다. 정 회장은 “경기가 호황일 때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일 때 호황을 준비하는 자세가 37년간 회사를 적자 없이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지방부동산 혹독한 겨울 맞을 것”

정 회장은 내년에 지방 부동산시장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부도 나는 지방 건설사가 또다시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외 산업통계에서 하나둘 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경남 입주경기실사지수(HOSI)는 35.7로, 작년 6월 조사 이후 처음 30선을 기록했다. 경북 HOSI도 40대에 머물렀다. HOSI는 공급자 입장에서 입주를 앞두고 있거나 입주 중인 단지의 입주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다. 100을 기준치로 그 미만이면 입주 여건이 좋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 회장은 “공급 과잉에 제조업 몰락이 겹쳐 지방 주택경기가 쉽게 살아나기 어렵다”며 “지방에 기반을 둔 주택업체들은 혹독한 겨울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인건비 상승도 건설업계의 위기 요인으로 꼽았다. 정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로 인한 인건비 상승으로 지방 중소 건설사들이 수익성을 맞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도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력산업이 속속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고, 미래 먹거리인 4차 산업 분야에서도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며 “국내 산업이 위축되면 건설업계도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빠르게' 아닌 '바르게'…무결점 아파트 위해 하자 없어도 재시공
■맡았던 직함 50개 넘는 '대전의 일꾼'…25년째 국가유공자 집 수리도

지역사회 발전 앞장서는 정 회장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맨 오른쪽)은 지역사회를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기업 이윤을 지역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지론이다.

국가유공자 가옥 수리가 대표적이다. 1994년부터 25년째 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노후주택 52가구를 수리·보수했다. 건설사로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대전 시민구단인 대전시티즌을 후원하고 있다. 올 9월에도 발전기금 1억원을 전달했다. 지역 대학인 대전 한밭대와 한남대에 각각 2억원과 1억원의 발전기금을 내놓기도 했다. 문화예술 나눔이(문화·예술·체육분야 후원), 희망교육 배움지원(교육기관 장학기금 전달 및 연구·학술단체 후원), 행복드림 공익활동(공익단체 후원), 큰사랑 복지사업(취약계층 및 복지시설 나눔활동) 등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원하면 각종 직함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양궁 등 각종 체육협회장을 비롯해 법원, 검찰, 경찰 자문위원까지 그동안 맡은 직함만 50개가 넘는다. 2014년엔 법무보호복지공단 대전충남지부 보호위원연합회장을 지냈다. 법무보호대상자(출소자)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지금은 제23대 대전상공회의소 회장, 제8대 대한건설협회 대전광역시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은 “기업은 시민과 함께 지역 속에서 늘 존재하는 만큼 사회공헌은 당연한 책무”라며 “대전의 발전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성욱 회장 프로필

△1946년 대전 출생
△1981년 금성백조주택 창립
△1999년 동탑산업훈장
△2010년 대전시 개발위원회 제8대 회장
△2011년 충남대 명예경영학박사
△2012년~ 대한건설협회 대전시회 8·9대 회장
△2015년 한밭대 명예공학박사
△2018년~ 대전상공회의소 23대 회장


대전=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