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 영랑호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리조트. 뒤편으로 설악산 대청봉이 보인다. 전형진 기자
강원 속초 영랑호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리조트. 뒤편으로 설악산 대청봉이 보인다. 전형진 기자
강원도 부동산 시장이 올림픽 후유증을 앓고 있다. 외지 투자수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올림픽을 겨냥해 지나치게 많이 공급된 아파트와 수익형 부동산 상품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 기대했던 관광객 증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중개업소들은 예상했다.

◆열정과 냉정 사이

강원도는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부동산 시장이 서울 강남 못지 않게 달아올랐던 곳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집값 상승률 상위 10개 지역엔 속초(6.48%)와 강릉(6.41%), 동해(5.93%) 등 강원도 주요 해안도시 세 곳이 나란히 들었다. 도 전체의 집값 상승률(2.76%)은 수도권(2.72%)보다 높게 나타났다.
강원도 아파트 매매가격 추이. 한국감정원
강원도 아파트 매매가격 추이. 한국감정원
하지만 올해 들어선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속초(-1.77%)와 동해(-0.75%)는 물론 춘천(-2.01%)과 원주(-1.58%)에서도 집값이 크게 떨어졌다. 속초 해변에 들어서는 조양동 ‘양우내안애 오션스카이’ 전용면적 84㎡ 분양권은 이달 3억9000만원에 손바뀜하면서 연초 대비 3000만원가량 내렸다. 투자수요가 몰렸던 ‘속초자이’ 분양권 역시 고점과 비교해 2000만~3000만원 정도 낮아진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춘천 후평동 ‘춘천더샵’ 전용 84㎡는 연초만 해도 2억5000만원 선에서 움직였지만 지난달엔 2억2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올여름부터 입주하는 원주기업도시 단지들의 분양권 값은 1000만~2000만원 정도 일제히 조정을 받는 모양새다.

아직 오름세를 보이는 강릉 역시 조만간 집값이 꺾일 우려가 크다고 현지 중개업소들은 예상했다. 투자 문의가 전과 비교해 크게 줄어들어서다. 초당동 C공인 관계자는 “투자 물건을 찾는 이들이 5분의 1 정도로 줄었다”며 “발 빨랐던 투자자들은 이미 털고 나간 지 오래”라고 말했다.

분위기 경색은 청약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올해 강원 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 8개 단지 가운데 5곳은 청약 미달을 기록했다. 이들 단지의 평균 청약률은 27%(2541가구 모집·690명 청약)에 불과하다. 태백에서 이달 분양한 ‘태백장성 동아라이크텐’의 경우엔 202가구 모집에 3명이 청약하는 데 그쳤다.

[집코노미] 부동산 시장도 폐막?…극심한 올림픽 후유증 앓는 강원
미분양 아파트도 쌓이는 중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강원 지역 미분양아파트는 5038가구로 지난 1월(2623가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된 원주(1690가구)와 동해(1243가구), 강릉(624가구) 등에선 불 꺼진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원주 단구동에서 공사 중인 한 아파트는 전체 919가구의 90%를 넘는 844가구가 미분양이다.

◆“산 높으니 골도 깊어”

저조한 분양 흥행은 강원 지역 부동산에 대한 투자 요인이 그만큼 감소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건설업계는 강원도에서 분양하는 새 아파트의 외지 투자수요를 다른 지역보다 높게 보는 편이다. 인구가 150만명에 불과해 자체 거주수요로는 한계가 있어서다. 휴양지 등에서 이른바 ‘세컨드 하우스’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바다나 호수 조망이 나오는 입지의 경우 외지 수요를 전체 가구수의 최고 60%까지도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강원도 부동산 시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재료로 이 같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며 질주를 해왔다. 올림픽에 맞춰 서울양양고속도로와 경강선KTX 등 굵직한 교통망이 잇따라 깔리자 서울 기준으로 ‘반나절 생활권’에 본격 편입되면서 집값 상승 등의 효과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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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림픽 이후 호재가 뚝 끊겼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을 받쳐주고 신규 투자자를 인입시킬 광역개발 재료가 남은 게 없다. 강원도 전체 아파트 거래량에서 외지인 투자자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중이다. 지난 연말 46%로 정점을 찍은 뒤 3월 30%로 내려앉았다가 지난달엔 28%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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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효과에 묻어가기 식으로 분양해 수요에 비해 과잉 공급됐던 물량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지난해 강원도 전체에서 5541가구가 입주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1만7200가구)와 내년(1만6800가구)엔 이보다 세 배나 많은 물량이 2년 연속으로 집들이를 한다. 강릉은 지난해 입주물량이 200가구에도 못 미쳤지만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시가지 주변에 5200여 가구가 쏟아진다. 미분양이 쌓인 원주는 올해 6500가구가 입주하는 데 이어 내년엔 7400가구가 또 집들이를 할 예정이다.

수익형 부동산시장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올림픽이 열렸던 평창을 비롯해 강릉과 속초 등 휴양지에 우후죽순 분양됐던 분양형호텔이 특히 위기다. 주인을 찾지 못한 미분양이 쌓이고 있지만 정확한 통계가 없어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들 지역에선 ‘회사 보유분 선착순 분양’ 혹은 ‘1억에 2채’ 등의 문구로 투자자를 현혹하려는 플래카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미분양 털이’에 안간힘을 쓰는 흔적이다. 속초의 한 분양형호텔 분양 관계자는 “전체의 20% 정도인 60실가량이 6개월째 나가지 않고 있다”면서 “실투자금이 높은 대형 면적은 판매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영업을 시작했지만 객실 분양이 끝나지 않은 곳도 허다하다.
강원 속초 해변에 걸린 분양형호텔 홍보 플래카드. 한경DB
강원 속초 해변에 걸린 분양형호텔 홍보 플래카드. 한경DB
분양형호텔은 호텔이란 이름을 쓰고 있긴 하지만 대형 관광호텔과는 다르다. 관광진흥법이 아닌 공중위생관리법을 적용받는 일반 숙박시설로, 일정 요건만 갖추면 등기가 가능하다. 준공 후 운영사에서 호텔 운영과 관리를 하고 투자자들은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배분받는 수익형 부동산의 일종이다. 하지만 제주 등에선 가동률이 낮아 약속한 수익률을 주지 못하거나 부도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분양형 호텔은 1억원 안팎으로 연 7~8%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유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확정 수익률은 근거가 없을 뿐더러 공급이 과잉된 지역에선 수익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고 처분이 쉬운 것도 아니어서 투자에 신중함이 요구된다. 실제론 지분등기가 가능하지만 분양 과정에서 마치 구분등기가 되는 것처럼 ‘개별등기’란 말로 교묘하게 위장해 판매하는 업자들도 있다. 지분등기일 경우 되팔기는 더욱 쉽지 않다.

속초 조양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미 주변에 숙박업소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과연 운영수익이 발생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성수기를 제외하면 객실이 제대로 찰 가능성이 없는 데다 교통이 편해진 만큼 숙박을 하지 않는 당일치기 관광객도 많아 전망이 어둡다”고 말했다. 강릉 초당동 C공인 관계자는 “현재도 분양한다는 곳이 많지만 손님들에게 절대 권하지 않는다”면서 “2억~3억원이면 강원도에선 새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인데 수익도 거의 나지 않는 분양형호텔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원주택 등 단독주택도 최근 공급이 크게 늘면서 분양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강원도의 단독주택인허가 건수는 2016년 5889가구에서 지난해 6499가구로 1년 동안 10%가량 증가했다. 김경래 OK시골 대표는 “아파트와 비교하면 대부분 실수요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볼 수는 없지만 그동안 공급이 많았다”면서 “산업이나 생활기반이 없는 지역의 휴양 중심 전원주택은 인기를 끌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