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커스] 조규진 "에너지 비용 확 줄인 '단독주택형 임대주택' 새 영토 개척했죠"
“왜 하필 임대주택입니까? 큰돈을 벌 수 있는 개발 프로젝트들이 제법 있을 텐데요.” 이 같은 질문에 조규진 더디벨로퍼 대표(58·사진)는 뜻밖의 답을 했다.

“개발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디벨로퍼의 길을 가는 게 아닙니다. 돈도 안 되는데 뭐 하러 임대주택 사업을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만, 집이 투자의 수단이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고 싶은 집을 공급하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개발업체라기보다는 시민단체 대표에 더 어울릴법한 말이었다.

조 대표는 최근 국내 첫 단독형 임대주택 프로젝트에서 결코 작지 않은 결실을 거뒀다. 그는 세종시와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 오산 세교지구 등에서 에너지 절감 기능을 갖춘 임대형 단독주택 단지 ‘로렌하우스’를 선보였다. 지난 8일 임차인을 모집한 결과 총 219가구 공급에 1598명이 신청해 평균 7.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동산시장의 관심이 온통 서울 강남아파트 등에 쏠려 있는 가운데 거둔 성적이다.

2~3층 높이로 지어지는 로렌하우스는 2억3000만원 안팎의 보증금으로 거주하는 중산층용 임대주택 단지다. 국내 최초의 제로에너지 건축기술을 적용했다. 고효율 3중 유리, 태양광 패널 등이 설치돼 같은 크기의 아파트보다 에너지를 65%가량 절감할 수 있다.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열회수 환기장치, 곰팡이 발생을 차단하고 아토피를 예방하는 외단열과 열교차단공법도 적용됐다. 로렌하우스는 에너지 제로(zero)와 임대주택(rental house)을 합친 말이다.

로렌하우스 시행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주택도시기금, 더디벨로퍼 등이 공동설립한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다.

임대주택 문화 바꾸기에 나선 조 대표는 원래 개발 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1994년 설립된 포스코건설의 창립 멤버인 그는 2015년 퇴사할 때까지 주요 개발 프로젝트를 도맡다시피했다. 분당 파크뷰, 부산 더샵센텀파크, 건대 스타시티 등이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2007년 그가 47세의 나이에 포스코그룹 전체를 통틀어 최연소 임원으로 올라 주목받은 것도 이 같은 실적이 바탕이 됐다. 재임 시절 글로벌 마케팅본부장을 맡을 때는 베트남 북(北)앙카임 신도시, 중국 훈춘 산업단지 등 해외 개발사업 활성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개발 사업에 정통한 조 대표가 임대주택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오래전부터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집을 사고파는 건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부산 출신인 조 대표는 1987년 대학(동아대 도시공학과)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약 30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10여 차례 이사했다. 모두 전세로만 살았다. 빈번한 이사로 인한 주거 불안정과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생활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가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단독주택 형태의 임대전용주택 단지 조성에 나선 배경이다. 로렌하우스는 분양전환을 하는 다른 민간임대와 달리 순수 임대주택으로만 운영된다.

청년 시절 조 대표의 꿈은 디벨로퍼가 아니라 전문 산악인이었다. 대학 시절 산악대장으로 활동하며 전국의 산을 누볐다. 설악산 빙벽에 오르다 탈진해 자칫 떨어져 죽을 고비까지 넘겼던 그는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기 직전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직하며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조 대표는 “염라대왕을 한번 만나고 와서 그런지 지금껏 아무리 큰 프로젝트를 겪어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며 웃었다.

조 대표는 앞으로 로렌하우스 형태의 임대전용 단독주택 단지를 전국 100여 곳에 조성해 새로운 주거문화를 주도할 계획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했던 산악인 시절 못지 않은 각오다. 사업 부지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관련 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하고 있다. 국내 총 1900만 가구 중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을 가진 가구를 5%만 잡아도 약 95만 가구의 잠재 수요가 있다는 것이 조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로렌하우스를 조성해 거주자들이 생애주기에 따라 언제든지 살고 싶은 곳으로 옮길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다른 디벨로퍼처럼 큰돈을 벌기보다는 향후 30년 정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