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로 재건축 층수 '49층→35층' 결정
"이익 집착해 지연됐지만 사업 탄력 받을 듯"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형진 기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형진 기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이 35층으로 추진된다. 서울시의 반대에 부딪혔던 기존 49층 초고층 재건축안은 주민투표를 거쳐 폐기됐다. 14년을 끌어온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26일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전날까지 진행된 주민투표에서 35층 재건축안이 확정됐다. 지난 16일부터 은마아파트 토지 등 소유주 4803명에게 49층안과 35층안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투표 참여자 3662명 가운데 71%인 2601명이 35층안을 선택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35층안을 최대한 빠르게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전경. 전형진 기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전경. 전형진 기자

올해로 준공된 지 38년이 지난 은마아파트는 그동안 14층 높이의 4424가구를 철거해 최고 49층 6000여 가구로 짓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주거지역 아파트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면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지난 8월 추진위가 도계위에 제출한 49층 정비계획안은 이례적으로 ‘미심의’ 반려되기도 했다. 심의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안건이라는 의미다.

대치동 S공인 관계자는 “잠실주공5단지처럼 일부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종(種)상향 받아 용적률을 300% 이상으로 높이는 게 49층안의 핵심이었다”면서 “초고층 랜드마크로 짓게 된다면 고(高)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는 데다 일반분양 가구수가 늘어나는 만큼 추가분담금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J공인 관계자는 “은마아파트의 요구를 들어주는 순간 여기저기서 같은 요구를 할 게 뻔한 만큼 서울시가 49층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앞으로도 없다”며 “재건축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려면 35층안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최고 50층 재건축이 허용된 잠실주공5단지는 광역중심에 위치해 종상향을 통한 초고층 재건축이 가능하다. 서울시의 도시개발기본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 따르면 잠실을 포함해 용산, 청량리·왕십리, 창동·상계, 상암·수색, 마곡, 가산·대림 등 지역은 ‘7광역중심’으로 분류됐다. 이들 지역과 한양도성(광화문), 영등포(여의도), 강남 등 ‘3도심’에선 지역별 특화기능에 부합하는 시설이 포함될 경우 초고층 건물을 세울 수 있다. 은마아파트의 경우 강남 도심에서 벗어난 주거지역이어서 초고층 건축이 불가능하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은마아파트 소유주들 가운데 일부는 박원순 시장의 임기가 내년 상반기까지인 만큼 제도 완화를 염두에 두고 기존 49층안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시세에 이미 투자수요가 상당히 포함돼 재건축 사업성이 중요한 데다 이제 와서 초고층을 포기하기에도 매몰비용이 상당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유주들은 ‘강행파’에 대해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지영(39·가명) 씨는 “일부의 탐욕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게 돼 모두가 공분하고 있다”며 “시간을 끄는 동안 규제란 규제는 다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은마아파트는 이대로 재건축사업이 궤도에 오르더라도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없다. 이달까지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재건축 단지들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것과 달리 향후 일반분양 시 분양가 규제를 받을 가능성 또한 높다.

갈 길도 멀다. 은마아파트는 2003년 추진위가 설립된 이후 14년 동안 재건축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아직 조합조차 만들지 못했다. ‘8·2 부동산 대책’에 따라 조합 설립 이후부턴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돼 사업 추진 단계에서 거래 동결은 불가피하다.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등 진통이 예상되는 인허가 과정이 남았고 이주 및 철거 단계의 잡음도 만만치 않은 변수다.

실기(失期)했지만 그나마 더 늦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아파트 소유주인 김모 씨는 “부동산 규제가 더 강해지고 있는 만큼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며 “그동안 많이 지연된 만큼 이제는 탄력을 받아 속도를 낼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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